최민식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이 비극을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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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역사적 사건은 영화의 소재로 제격이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펼쳐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요즘 대부분의 사극영화들은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팩션(faction)’ 형식을 취한다. 또 특정 시대 상황을 차용해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 내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 비춰볼 때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亂) 당시 한양을 정복하기 위해 북상하는 왜군(倭軍)을 명량 바다에서 막아낸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별다른 장치 없이 단순한 제목을 붙여 정공법으로 그려낸 ‘명량’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서는 영화다.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을 오가며 수도 없이 봐온 이순신 장군을 스크린에서 다시 만나는 것이 그리 설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그런 우려를 한방에 날려 주는 다양한 매력을 지녔다. 줄거리와 캐릭터에 대한 사전 지식이 오히려 가슴 벅찬 감동을 배가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물론 왜군의 계략으로 누명을 쓴 채 파면당했다 원균이 이끄는 수군이 칠천량에서 대패한 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이순신이 사기가 땅에 떨어진 부하들을 이끌고, 왜군의 재침을 막아내기 위해 고뇌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전반부는 다소 늘어지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후반부에 장쾌하게 펼쳐지는 해전 장면을 흥미진진하게 따라가려면 앞부분의 드라마를 집중해서 봐두는 게 좋다.

61분간 전개되는 해전 장면은 압권이다. 이 영화의 연출자인 김한민 감독이 21일 언론시사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해전은 단순한 비주얼 싸움이 아니다. 관객들이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해전 속에서 드라마가 함께 따라갈 수 있길 바랐고, 그런 점에 연출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듯 12척의 배를 지닌 조선 수군과 330척을 앞세운 왜군이 펼치는 액션 장면들 속에 여러 캐릭터들의 다양한 감정이 세세하게 녹아 있다. 이순신이 아들 이회에게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이길 수 있다)”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여준 후 실제로 두려움에 떨며 뒤로 빠지던 조선 수군들이 위기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며 냉철하게 지휘하는 이순신의 리더십에 감동해 다시 용기를 내 전투에 나서는 모습을 극적으로 펼쳐 냈다.

또 이순신이 대조기를 맞은 울돌목의 거친 물살을 이용한 전략으로 왜군을 통쾌하게 무찌르는 장면이 긴박하게 이어지며 활과 포를 쏘고, 죽을 힘을 다해 노를 젓는 등 각자의 위치에서 용감하게 싸우는 병사들의 진지한 표정과 남편을 희생시키며 수군을 돕는 한 여인의 투혼이 큰 울림을 전한다.

해전 장면이 긴 시간 반복되지만 다양한 앵글과 속도감 있는 편집으로,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진다. 여기에 150인조 오케스트라가 뿜어내는 힘있는 음악이 심장 박동수를 높인다.

주·조연, 단역 할 것 없이 모든 출연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연기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특히 이순신 장군 역을 맡은 최민식은 “아직도 내 연기가 개운치 않다”고 아쉬움을 나타냈지만 캐릭터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영화의 맛을 한껏 살려 냈다. 그는 “그분의 눈빛이 과연 어땠을지, 그분의 신념이 어떤 목소리로 전달됐을지, 어떻게 고뇌하고 슬퍼하셨을지 잘 모르겠더라”며 “나는 흉내만 낼 뿐 스스로를 믿을 수가 없었다. 최대한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많은 일본인이 현재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정책에 반감을 보이는 것으로 안다”며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이 얼마나 많은 비극을 초래하고 무고한 생명을 살상했는지 역사적 교훈을 통해 일본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류승룡이 이순신에 맞서는 왜군 용병 구루지마를 개성있게 연기했으며 김명곤, 조진웅, 이정현, 진구 등도 열연을 펼쳤다. 또 일본인 배우 오타니 료헤이(大谷亮平)가 일본인이지만 이순신 장군 편에 서는 준사 역을 맡아 관심을 모았다. 그는 ‘일본 국민 정서에 반하는 인물을 연기하며 부담은 없었냐’는 질문에 “시나리오를 보고 준사 역에 끌렸다”며 “부담되는 부분은 감독님과 상의해 모두 정리하고 촬영에 들어갔다”고 답했다. 최민식은 시사회에 참석한 기자들에게 “오타니에게 박수 한번 쳐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3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