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장 紀行>해안 기암절벽 위의 그린들… 여기가 한국의 페블비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 16번홀 티잉 그라운드에서 바라본 그린 전경. 계곡을 넘겨쳐야 하는 이 홀에서 때마침 해질 녘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치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 제공

필자의 골프여행은 언제나 ‘랜덤’이었다. 누구의 소개없이 오직 책을 통해서 계획을 세워 비행기 표를 구하고 현지에 내려서 렌터카를 빌린 다음 지도를 보고 골프장을 찾아가 다짜고짜 한국에서 왔으니 플레이하게 해달라는 식이었다. 처음으로 가본 해외 골프장은 미국 샌디에이고 근처의 엘카미노. 그 다음날에는 라코스타. 그리고 이틀 뒤에 페블비치였다.

그 후 오거스타내셔널, 베이힐 등지를 다녔다. 그 결과 해외골프장이 좋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러다가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의 올드코스, 카누스티, 킹스반, 뮤어필드, 로열트룬 등을 둘러보았을 때에는 국내 골프장들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지난 9일 1박2일로 경남 남해군 창성면에 신설된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을 다녀오면서 생각이 또 바뀌었다.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 진주IC에서 남해고속도로로 들어선 뒤 사천IC에서 내려 3번국도를 탔다. 사천대로를 타고 사천시를 관통하여 삼천포창성대교를 지나 남해에 들어섰다고 생각했으나 뒤에 알고 보니 남해본섬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사우스케이프는 남해 본섬이 아닌 창성도에 소재하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았던 아내는 연신 일본의 어느 시골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날씨는 잔뜩 흐렸다. 때마침 태풍 ‘너구리’ 영향으로 남해에 비 예보가 있었다. 다행히도 다음날 조물주는 난생 처음 사우스케이프를 방문한 필자에게 플레이를 허용해 주셨다.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말은 ‘아는 만큼 보인다’였다. 처음 본 사우스케이프에서 그 말을 다시 떠올렸다.

그 동안 주눅들어 있던 마음이 활짝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한마디로 “이렇게 좋은 곳이 정말 한국 땅인가” 하고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사우스케이프를 돌아보니 페블비치를 예찬했던 게 후회될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곳을 찾아 골프장을 만든 이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골프장을 만든 주인공은 의류제조업을 해서 큰 돈을 번 정재봉 회장이다. 골프와 물을 좋아해서 우연히 이곳의 터를 발견했다고 한다. 사우스케이프가 자리 잡은 지역은, 남해안에서는 보기 드물게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기암절벽 위로 시작되는 숲은 이곳이 섬이라는 느낌보다는 심산유곡에 온 기분을 느끼게 할 만큼 울울창창했다.

주변의 바다는 수심이 깊은 듯 조수간만의 차를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그래서 흐린 날씨임에도 푸르스름한 에메랄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들쑥날쑥 리아스식 해안을 하고 있다. 이곳은 여러 개의 곶이 모여 있는 형태였고, 설계자는 그 곶의 끝자락마다 절묘하게 퍼팅그린을 배치해 놓았다.

바다 계곡을 건너야 하는 파3홀인 6번홀도 빼놓을 수 없지만, 특히 페블비치의 6번홀을 연상시키는 파3의 14번홀과 퍼팅그린 오른쪽에, ‘선 라이즈 하우스’라 이름지은 티 하우스는 타이태닉호의 모습을 한 전망대였다. 마치 상상 속의 골프홀들을 모아놓은 달력그림을 보는 듯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뇌리에 이런 말이 아른거렸다. “사우스케이프에 다녀와 보지 않고서는 해외 골프장이 좋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