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 바다 안개 속에 갇힌 선원 6명의 욕망과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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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에서는 나가 대통령이고 판사고 느그들 아버지여.”

여수 바다를 무대로 활동하는 전진호 선장 철주(김윤석)의 이 한마디는 28일 언론시사회에서 공개된 영화 ‘해무’를 지배하는 정서다. 평생을 배 하나에 의지해 돈을 벌고 가족을 먹여 살려온 철주에게 전진호는 포기할 수 없는 대상이다. IMF의 여파로 경제가 파탄나고 어업량까지 감소하자 철주는 전진호로 밀입국하는 조선족을 실어 나를 결심을 한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거듭되고 광기에 사로잡힌 선원과 밀입국자들의 운명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해무(海霧)’는 바다 위에 끼는 안개로 짙은 해무가 오면 배의 운항이 어려울 정도로 시야가 제한된다. 이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전진호 구성원들의 운명을 암시하기도 한다. 배를 지키기 위한 어떤 위험도 감수하는 선장과 배에 숨어 사는 인정 많고 사연 많은 기관장 완호(문성근), 선장의 명령을 묵묵히 따르는 행동파 갑판장 호영(김상호)과 돈이 세상에서 최고라 생각하는 롤러수 경구(유승목), 그리고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선원 창욱(이희준)과 이제 갓 뱃일을 시작한 순박한 막내 선원 동식(박유천) 등 전진호에 올랐다는 것 외에는 공통분모를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의 동행은 수시로 삐걱거린다. 각각 돈, 인정, 의리, 사랑, 여자에 굶주린 이들 앞에 밀입국시켜야 하는 여성 홍매(한예리)가 등장하면서 잔잔하던 해무는 회오리바람이 된다.

봉준호 감독이 제작하고 ‘살인의 추억’의 각본을 쓴 심성보 감독의 데뷔작인 ‘해무’는 일단 입체적인 캐릭터 구성이 돋보인다. 거제도, 여수, 아산을 돌며 촬영을 진행한 여섯 배우는 실제 뱃사람을 방불케 하는 외모와 자연스러운 연기로 눈길을 모은다. “뱃사람을 연기하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다. ‘누가 더 선원 같은가’ 경쟁하듯 촬영했다”는 김윤석의 말마따나 김윤석부터 영화에 첫 출연하는 박유천까지 흠잡을 데 없는 연기력을 선보였다. 여기에 연극을 원작으로 한 탄탄한 시나리오와 밀도 높은 연출이 더해져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하지만 올여름 개봉되는 대작 중 유일하게 ‘19금’ 딱지가 붙은 ‘해무’는 결코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비린내가 물씬 풍길 것처럼 사실감 있는 묘사와 인간성의 끝을 보여주는 무자비한 장면은 오금을 저릿하게 만든다.

‘해무’는 올여름 극장 대전(大戰)의 대미를 장식하는 영화다. ‘해무’를 끝으로 ‘군도’ ‘명량’ ‘해적’ 등 대작 4편이 모두 속살을 드러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질감을 가진 네 영화는 저마다 다른 지점에 방점을 찍으며 상반된 매력을 갖추고 있다. 베일을 벗었지만 네 영화의 흥행 여부는 오히려 더 해무에 갇힌 기분이다. 8월 13일 개봉.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