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진 교수의 드라마 세상>운명처럼 널 사랑해, 유치해서 재미있는 로맨틱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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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 복이 온다고 한다. 웃음은 만병통치약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웃을 일이 없다고들 한다. 사는 게 힘들고 고달프기도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 이상한 현실 때문에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익살과 해학이 살아 있는, 그래서 만병통치약과도 같은 건강한 웃음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추레한 현실 때문에 웃음에 대한 갈증이 심한 여름에 유치해서 재미있는 로맨틱코미디 한 편이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MBC 수목미니시리즈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경쾌한 웃음과 함께 달콤한 사랑의 판타지로 무장한 로맨틱코미디이다. 옷깃조차 스치지 않을 것 같은 생면부지의 청춘남녀가 하룻밤 실수로 임신을 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통해 물질적 욕망으로 점철된 우리 시대의 사랑과 결혼 세태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행동이나 성격은 물론 이름마저 지극히 평범하면서 바보처럼 착한 여자 ‘김미영(장나라 분)’과 까칠하면서 낯가림이 심한 전주 이씨 가문의 9대 독자이면서 재벌 후계자인 ‘이건(장혁 분)’의 어처구니없는 하룻밤 실수와 임신 그리고 계약결혼 등의 에피소드에 운명 같은 사랑의 소중함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온몸이 오글거릴 정도로 유치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패스티시 기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비판과 풍자의 관점에서 원작의 권위나 유명세를 해체하는 패러디 기법이 아니라, 다양한 텍스트를 무작위로 단순 모방하여 뒤섞으면서 비판이나 풍자보다 웃음에 초점을 맞춘 패스티시 기법은 부담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웃음을 유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김미영과 이건의 하룻밤을 떡방아 찧는 장면으로 대신하고, 철부지 같은 이건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얼음땡놀이를 활용하는가 하면, 이건 역할을 맡은 배우 장혁이 출연했던 드라마 ‘추노’의 주제곡이나 ‘잘 했군 잘 했어’처럼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노래나 음악을 극적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삽입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얼핏 보면 유치하지만, 유치한 만큼 재미있는 것이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매력이다.

패스티시 기법을 활용한 연출은 어처구니없는 하룻밤의 실수와 임신, 그리고 계약결혼이라는 내용의 민감함을 희석시키기도 한다. 이른바 ‘막장드라마’에서 남발되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상황 연출 없이 사랑과 결혼 그리고 가족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김미영이 태어난 곳이자 언젠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여울도의 공장 매각 에피소드처럼 환경과 생태 문제까지 제기하고 있어 흥미롭다. 다만, 김미영의 언니 부부가 서울에 놀러 왔다가 한강 유람선 위에서 출산하는 소동이나 김미영이 이건의 돈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꽃뱀이라는 증권가 찌라시 사건처럼 억지웃음과 감동 유발에 초점을 맞춘 에피소드 연출은 과유불급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로맨틱코미디 장르 문법을 충분히 활용하여 웃음을 통한 사회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로맨스에 대한 판타지까지 충족시켜준다.

사랑의 감정 없이 임신 때문에 시작한 계약결혼생활에서 김미영과 이건이 서로 오해하고 갈등하다가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과정은 물질만능주의에 오염된 우리 시대 사랑과 결혼의 세태에 대한 경각심과 운명처럼 찾아올 사랑에 대한 기대심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종종 헛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인상을 찌푸릴 정도는 아니다. 남녀주인공을 맡은 배우 장혁과 장나라의 열연을 주목하는 것도 경쾌함과 달콤함을 겸비한 로맨틱코미디 ‘운명처럼 널 사랑해’를 즐기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