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미 기자의 컬처 톡>다시 오지 않을 유행, 영원히 유행 없는 옷

가끔 옷장 정리를 합니다. 몇 년째 손이 잘 가지 않는 옷이 많습니다. 해어진 곳은 없지만 디자인이 낡아 보여서입니다. 그런데 선뜻 ‘처리’는 못 하겠습니다. ‘패션은 돌고 돈다’는 말에 생각이 묶이거든요. 그런데 최근 한 패션회사 관계자가 제 ‘쌓아둔 옷 목록’을 듣더니 “아무래도 그건 다시 입기 힘들겠다”며 웃었습니다. 그는 “지구는 변함없이 돌겠지만, 패션은 더 이상 돌고 돌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대중의 갈망과 이에 발맞춘 트렌드가 지난 10년 간 뚜렷하게 한 방향을 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라이프스타일과 옷, 유행 등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는데요, 요약하자면 “21세기 지구인들은 가능하면 어려 보이고(looks young), 최대한 날씬해 보이기(looks slim)를 바란다”입니다. 그러니 이 공식에 어긋나는(나이 들어 보이거나 뚱뚱해 보이는) 옷은 ‘패션 순환 주기’에서도 퇴출됩니다. 예컨대 한때 거리를 휩쓸었던 판탈롱 일명 ‘나팔바지’나 힙합 스타일 배기팬츠 등은 하체가 짧고 비대해 보이기 때문에 연예인이나 일부 마니아를 제외하곤 전처럼 선풍적인 인기를 끌긴 어려울 겁니다.

이제 다시는 유행하지 않을 옷도 있지만, 영원히 유행 ‘밖’에 존재하는 옷도 있습니다. 시즌마다 쏟아지는 스타일 분석이나 전망에서도 비켜나 있습니다. 바로 해마다 전세계 18억 장 이상이 팔린다는 청바지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최근 이 ‘일상적이고 평범한’ 아이템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는데요, 지난 1년간 이 박물관 강경표·김진숙 학예연구사와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학생들이 진행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입니다. 이 보고서에서 대니얼 밀러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인류학과 교수는 “거리에서 무작위로 표본을 추출한 결과 현재 세계인의 약 50%가 청바지를 입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는 순수하게 데님(denim·푸른색의 질긴 면직물)만 사용한 제품뿐 아니라 ‘청바지인 듯 청바지 아닌 청바지 같은’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청바지는 지구 어디에나 존재하고, 누구나 한 벌은 가지고 있으며, 지난 100년간 그 형태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옷’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물론 디자인과 색상에 따라 세대 간 격차를 뚜렷하게 보이는 게 이 청바지이기도 한데요, 문화권 혹은 계층에 따라 이를 보는 인식도 상이합니다. 조사단이 현지 방문한 인도 칸누르 지역에서는 부녀자가 청바지를 입으면 ‘몸 파는 여성’으로 여겨져 금기시하며, 브라질에서는 파티에서 몸매를 뽐내고 이성을 유혹하는 아이템의 하나로 청바지를 입는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한국에 청바지가 들어온 지 60년이 됐다고 합니다. 우리의 ‘청바지 문화’는 어떨까요. 민속박물관의 흥미로운 보고서를 보기 전에, 거리의 청바지를 유심히 보라고 권해드립니다. 몇 시간만 사람들의 엉덩이를 따라가다보면 금세 성별, 세대별 또는 지역별 ‘스타일’이 보입니다. 아, 성희롱으로 체포되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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