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新 풍물기행’>낡은 LP와 로큰롤이 共存하는… 영원한 청춘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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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명 ‘주차장 골목’이라 불리는 홍대 앞 번화가는 도로 중앙에 주차장이 있고 양 옆으로 일방통행길이 나있다. 차와 보행자가 질서 없이 섞이는 1㎞가 넘는 이 길은 강북 청춘들의 메카다. 골목이라 불리기에는 넓은 데다가 붐비는 편이지만 홍대를 찾는 누구나 이곳을 ‘주차장 골목’이라 칭한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8)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의 서울 홍대거리

“아저씨, 홍대 주차장 골목으로 가주세요!”

지난 20여 년의 시간 동안 나는 이 문장을 몇 번이나 말했을까?

이제는 청춘이라는 단어와 동의어가 되어버린 홍대거리를 처음 찾은 것은 1990년대 후반이었다. 음악잡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일종의 신고식처럼 음악계 선배들의 손에 이끌려 홍대에 도착했다. 당시 유행하던 등나무 삼겹살로 간단한 식사와 반주를 곁들인 일행은 노천으로 테이블을 옮겨 생맥주를 들이켰고, 급기야 얼큰한 취기와 누군가의 유혹을 받아들여 우르르 클럽으로 향했다. 열어 놓은 문틈으로 쿵쾅거리며 들려오는 디지털 사운드가 신세계 도착을 환영하는 팡파르처럼 들리던 그곳에는 낯선 간판이 하나 걸려 있었다. ‘명월관(明月館).’

소위 알 만한 사람들끼린 다 알았다는, 당시 최고의 테크노 클럽이었던 ‘명월관’은 ‘엠아이(M.I)’와 함께 ‘씬’을 양분하고 있던 명소였다. 1990년대 초중반 가장 핫한 클럽이었던 ‘상수도’와 ‘발전소’의 뒤를 이어 전성기를 구가하던 ‘명월관’은 풍류(!)를 아는 청춘들이라면 통과의례처럼 반드시 거쳐야 했던 성지였다. 지금의 클럽에 비한다면 다소 소박하게 느껴질 인테리어와 조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각자의 몸 안에 2000㏄ 엔진을 하나씩 달고 있었던 20대의 청춘들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다. 붉은 빛 조명들이 서치라이트처럼 머리 위에서 돌아다녔고, 베이스 음이 과도하게 강조된 사운드가 고막을 향해 무차별로 덤벼들었다. 그리고 손에 들린 맥주 한 병. 청춘의 한낮이 그곳에 있었다.

거리는 생물이다. 사람의 일생처럼 태어나고 성장하며 노쇠하고 소멸해간다. 그래서 어떤 거리는 한 사람, 혹은 한 세대의 동반자이자 그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기록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홍대는 온전히 90년대 청춘들의 것이다. 상업자본이 아직은 거리를 장악하지 못한 시대, 젊은 아티스트들의 취향과 개성, 그리고 치기 어린 시도가 끓는 물처럼 이곳저곳에서 넘실거리던 공간, 홍대는 90년대에 발화되었다. 그리고 그 세례를 받은 이들은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에도 ‘불금’을 핑계 삼아 택시에 올라타고 ‘아저씨, 홍대요!’라는 익숙한 문장으로 이제는 희미해진 자신들의 지난 청춘을 기억하려 그곳으로 향한다.

스타벅스와 유니클로는 어김없이 2014년의 홍대에도 등장했다. 작지만 독특했던 고만고만한 가게들은 이제 많이도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홍대는 아직 홍대다. 일본의 하라주쿠(原宿)와 시모키타자와(下北澤)가 그렇듯, 대한민국의 다른 거리 어디와도 비교하기 힘든 에너지가 있다.

지하철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홍익대 정문으로 향하는 오르막에 들어서면 양쪽 길가를 가득 채운 젊은이들과 마주친다. 자로 잰 듯 똑바르지는 않지만 장성한 소나무의 가지들처럼 가로로 펼쳐진 골목 사이사이에는 아담한 옷집들과 가난한 청춘들을 위한 닭갈비집, 실내 포장마차, 꼬치구이집들이 즐비하다. 간판엔 때가 끼고, 빛이 바랜 벽면들은 만만치 않은 연식을 눈치 채게 한다. 정겨우며 눈물겹다. 길의 전면을 장악한 거대 자본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애써 찾아올 누군가를 위해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우직함이 그렇다. 물론 홍대의 골목들이 지난 시절의 영화를 기리는 낡은 상점들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다. 트렌드를 반영한 아이스크림 상점과 미래의 예술가들이 장기를 발휘해 만들어 놓은 액세서리 전문점들은 그 자체로 풍성한 볼거리가 된다. 인테리어가 훌륭한 샵들의 정문에는 잔뜩 멋을 부린 피팅 모델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고 그들을 찍는 포토그래퍼가 또 다른 한 쌍의 인테리어가 되어 방문객들의 눈요깃거리가 된다.

메인 도로의 옆구리에 위치한 이런 자그마한 유혹들을 물리치고 홍익대 정문까지 올라가 우회전을 하면 보헤미안들의 집합소인 놀이터가 나타난다. 때때로 벼룩시장이 들어서고, 노랗게 염색한 머리와 반짝이는 큐빅으로 애써 장식한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무심히 끼워넣은 여인들이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이 펼쳐진다. 슬쩍 그 대화에 끼어보고 싶은 욕심도 나지만, 그네들과 나 사이엔 시간이 쳐 놓은 장벽이 꽤나 높게 서 있어, 다른 언어를 쓰는 인류처럼 나누어져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

놀이터를 좌측으로 놓고 골목길로 들어서면 목적도 없이 그저 이리저리 배회하는 듯한 일군의 청춘들과 조우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구경하며 금맥을 찾는 순례자들처럼 홍대의 골목 곳곳을 샅샅이 훑고 다니는 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마주치게 되는 반가운 얼굴들이다. 떠올려보면 그랬던 것 같다. 아무 이유 없이도 무작정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으로 젊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던 것 같다. 종로에서 명동으로, 강남역에서 신사동으로, 그리고 신촌에서 홍대로 방향도 정하지 않고 걷고, 쳐다보고, 즐거워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청춘들도 그때와 그리 다르지 않다.

지나간 추억에 대한 가벼운 상념을 벗 삼아 골목을 따라 걷다 좌측으로 다시 한 번 방향을 틀면 홍대의 랜드마크와도 같은 ‘수 노래방’과 ‘상상마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벽면이 유리로 장식되어 안에서 노래 부르는 이들을 감상(!)할 수 있는 수 노래방은 세상에 자신을 알아달라고 하는 청춘들의 바람을 마케팅으로 가장 적절히 활용한 곳이다. 습하고 후미진 방으로 기어 들어가 은밀히 술잔을 나누어야 비로소 편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중년의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한낱 노래방의 풍경 속에서 발견된다. ‘여기 내가 있어요. 자, 세상이여, 사람들이여, 내게 시선을 돌려주세요’라고 외치는 듯하다. 그리고 그 거침없는 아름다움에 주책없는 눈물 한 방울도 고인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10원짜리 싸구려 감상과 함께.

현재의 홍대는, 아니 홍대거리는 과거의 구획보다는 좀 더 넓어진 광의의 개념으로 정의된다. 상수역과 합정역까지 관할(?)구역으로 합류시키고, 길 건너 연남동까지도 확장시킨다. 이런 광의의 홍대거리가 된 것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가난하지만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자신들의 기호와 개성으로 꾸미고, 장식해 만들어진 것이 초기의 홍대거리이다. 그곳에 사람들이 찾아와 자그마한 상권이 형성되고, 소식을 들은 또 다른 누군가가 다시 모여들어 홍대거리는 조금씩 부피를 늘렸다. 그러나 홍대의 전성기라고 일컬어지는 90년대 후반을 거치자 대기업들의 자본이 홍대거리의 목들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국가의 어느 거리든 한 번은 겪게 된다는 속칭 ‘거리이론’에 따라 초기 홍대거리의 원주민들은 상권의 확장을 빌미 삼아 높은 월세를 받으려는 건물주들과 마찰을 빚었고, 그 부담을 견디지 못한 이들은 청춘의 메카와도 같은 이곳을 떠나갔다. 그러나 자신들이 한때 머물렀던 홍대거리로부터 너무 멀리 가고 싶지 않았던 이들은 상대적으로 월세가 싼 상수와 합정, 그리고 연남동으로 근거리 이주를 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새롭게 머문 곳 역시 애써 ‘홍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현재의 홍대거리는 이런 신구의 자본 교체와 이동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오리지널의 홍대거리가 자본에 의해 확장되자 당연하게도 구역이 나눠졌다. 현재의 젊음과 과거의 젊음이 모이는 곳으로. 주차장 골목을 중심으로 한 메인 거리엔 주로 현재의 젊음이 가득하다. 당연히 상점들의 라이프 사이클이 빠르고, 저가의 술집들과 커피 전문점들이 위치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확장된 구역이라고 할 수 있는 상수, 합정, 연남동엔 역사를 지닌 가게들이 이전을 통해 여전히 영업 중이며, 그래서 좀 더 노련한(!) 취향의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아마도 현재 당신의 나이가 어디쯤인가에 따라 홍대거리는 각기 다른 곳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홍대거리의 어딘가에는 여전히 현란한 클럽과 작고 예쁜 점포와 낡은 LP와 시끄러운 로큰롤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라디오헤드의 ‘크립(Creep)’과 패럴 윌리엄스의 ‘해피(Happy)’가 사이좋게 공간을 나누고 공존하는 곳, 그곳이 바로 지금의 홍대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