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위증은 민주주의의 최대 위협이다”

박 민/사회부장

워터게이트 사건의 특별검사 아치볼드 콕스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의해 해임된 뒤 이렇게 말했다. “미국 정부가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정부가 아니라 법률을 따르는 정부로 계속 남을 것인지는 이제 의회, 궁극적으로는 미국 국민의 결정에 달려 있다.”

1972년 6월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다 적발된 가택침입 사건은 재판과정에서 백악관 연루설이 폭로되면서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비화하기 시작했다. 이어 상원 특별위원회 청문회를 통해 닉슨 대통령이 연루됐고 사건 모의에 가담한 사람들의 대화 내용이 담긴 테이프가 백악관에 보관돼 있음이 드러났다. 콕스 검사는 문제의 테이프 제출을 요구했으나 닉슨 대통령은 제출을 거부하는 대신 콕스를 해임토록 했고 이에 반발한 엘리엇 리처드슨 법무장관이 사임하자 언론은 닉슨의 탄핵을 요구했다. 결국 1974년 상원 법사위원회가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하자 닉슨은 그해 8월 8일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진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려는 시도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약속과 신뢰의 토대 위에 서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공정한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고 선출된 대표들로 구성된 의회가 헌법과 법률을 만들고 그 법에 따라 행정부는 국가를 운영하고 사법부는 재판을 하는, 이 잘 짜인 민주주의 메커니즘의 최대 위협은 거짓말이다. 국회 청문회나 검찰·경찰의 수사, 법원의 재판 등에서 거짓말을 할 경우 위증죄로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는 공적인 역할을 맡을 수 없도록 정치적·사회적 책임을 묻는 것도 이 때문이다.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과정과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위증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대함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정 후보자는 지난 7월 10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1988년 매입한 아파트를 전매제한을 어기고 되팔았다는 의혹에 대해 ‘실제로 거주했다’고 주장했다가 야당 의원이 해당 아파트 구매자의 상반된 통화 내용을 공개하자 위증을 했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정 후보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 후보자는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하겠다는 야당의 압박 때문에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만만치 않았다.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수사과정에서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7·30 재·보선 광주 광산을 후보로 전략 공천한 것이다. 그러나 김 전 청장은 1, 2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고 1심 재판부는 권 의원의 진술에 대해 “객관적 사실과 배치되는 것으로 허위임이 명백하다”고 판시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하다 경찰에 특채돼 누구보다 사실관계에 엄격해야 할 권 의원이었지만 이 판결로 결국 시민단체에 의해 모해위증죄로 고발됐다. 더구나 권 의원은 변호사로 재직할 때 위증을 교사한 혐의로 검찰 내사 대상에 올랐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이 권 의원을 ‘정의의 아이콘’으로 전략 공천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다행인 것은 콕스 검사의 기대처럼 국민의 결정은 현명했다는 것이다. 광주 광산을 지역은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전국 최고 득표율(92.7%)을 기록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재·보선 지역 중 가장 낮은 투표율(22.3%)을 보였고 권 의원의 득표율도 60.6%(전체 유권자 기준 13.5%)에 그쳤다. 역시 야당 텃밭인 전남 순천·곡성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51%의 투표율에 49.43%의 지지(전체 유권자 기준 25.2%)를 얻은 것을 감안하면 권 의원 공천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을 읽을 수 있다. 야당이 4 대 11이라는 스코어로 참패한 결정적 이유로 권 의원의 공천이 꼽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권 의원은 당선 직후 “정의가 미래라는 것을, 진실이 희망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말했다. 권 의원이 향후 위증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를 거부하거나 법원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으려면 그 같은 사법절차를 만든 국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나만의 정의와 진실은 결코 우리의 미래와 희망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