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도 교수도…소소한 물건으로 ‘나’를 드러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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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14-08-0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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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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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걸그룹 소녀시대 효연이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가방 속 소지품 사진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 일반인 사용자가 올린 화장대 풍경.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기진 교수가 만든 도자기 로봇들. 파리 아트페어에 전시되기도 했다. 웅진서가 제공


거창한 소장품이 아니라, 사소한 용품이다. 요즘 소지품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게 붐이다. 핸드백이나 화장품 파우치 속을 과감하게 공개한다.‘누가 이런 걸 모을까’ 싶은 수집품으로 책도 내고 전시회를 연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급 외제차나 수백만 원짜리 명품백, 혹은 수억 원에 이르는 도자기보다 ‘사람’을 더 잘 설명해 주는 건 결국 ‘일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남과 같거나 다른 취향, 삶의 방식을 공유한다. 어쩌면 겉포장이 화려해진 시대에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은 심리가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사소한 것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행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가장 활발하다. 단 한 장의 사진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인스타그램에서 유행 중인 ‘인 마이 백 릴레이(in my bag relay)’로, 요즘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놀이다. 화장품 파우치나 가방 속 물건을 쏟아 사진을 찍어 올리는데, 이때 ‘in my bag relay’라는 태그(tag·꼬리표)를 붙이면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자발적 ‘소지품 검사’인 셈.

비비안웨스트우드 선글라스, 샤넬 립스틱, 랑콤 마스카라, 메탈 소재 명함지갑, 조 말론 향수, 소니 이어폰 등 한눈에 브랜드와 용도를 알 수 있는 ‘사소한 물건’이 주인을 말해준다. 독특한 취향이나 무의식적 습관 혹은 그 여자의 ‘모든 것’일 수도 있다. 별것 아닌 듯 하지만 보는 이도, 공개하는 이도 재미가 쏠쏠하다. 고급 레스토랑에 가거나 해외 럭셔리 브랜드를 쇼핑한 후 ‘과시용’으로 올리던 페이스북 포스팅보다 훨씬 부담없고 소박하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라는 면에 있어서도 설득력이 높다.

현재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창에 ‘in my bag relay’를 입력하면 120여 장의 사진이 검색된다. 주로 연예인이나 패션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이 올린 것인데,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효연이 올린 사진도 나온다. 효연은 지난 6월 자신의 가방 속 물품을 공개했다. 립글로스, 콤팩트, 파우치, 헤드폰, 선글라스, 향수 등 일반 여성과 별반 다르지 않은 아이템이지만, 효연의 일상과 라이프스타일도 함께 공개된 거나 다름없다. 침실이나 욕실만큼 여성의 가방은 은밀한 것이기에. 이 놀이의 또다른 재미는 바통을 넘기는 데 있다. ‘relay’라는 문구에서 드러나듯, 지목을 당한 사람은 소지품을 공개해야 하는 ‘룰 아닌 룰’이 있다.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에서도 약간씩 명칭만 다를 뿐 자신의 가방 속이나 화장대 위를 공개하는 사용자들이 많다. ‘인 마이 백(in my bag)’이라는 일본 페이스북 계정은 화장품 파우치나 여성의 핸드백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가방 속’을 보여주는데, 현재 이 포스팅을 고정적으로 받아보는 사용자만 1만2000여 명이 넘어선다. 가죽 지갑과 명함 케이스, 안경집 등이 멋스러운 한 남자 회사원의 출근 가방, 맥가이버 칼과 여러 종류의 카메라가 들어있는 여행객의 배낭, 헬로 키티 등 앙증맞은 학용품이 잔뜩 들어있는 여고생의 책가방 등 일본 ‘보통 사람’들의 가방 속이 흥미롭다. 최근 인스타그램에 ‘내 화장대’라는 태그를 붙여 자신의 소지품을 공개한 김진이 스튜어트 와이츠먼 과장은 “다른 여성들의 화장품을 보는 게 무척 재밌다. ‘저건 내거랑 똑같네’ ‘어, 저건 뭐지?’ 하면서 본다. 그러다가 이번에 내 화장대를 공개했는데, 각양각색 댓글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고 전했다.

문화 쪽에서 보면 작은 소품을 통한 취향의 드러냄은 2000년 초반, 개인 박물관 개관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3년, 가정주부 배명희 씨가 세계 80여 개국에서 모은 부엉이 관련 소품 3000여 점으로 ‘부엉이 박물관’을 열었고, 사진가 손원경 씨는 2006년 어린 시절부터 수집한 영화캐릭터와 장난감 40여만 점으로 ‘토이키노박물관’을 열었다.

한편 최근 출간된 이기진(물리학) 서강대 교수의 ‘나는 자꾸만 딴짓을 하고 싶다’(웅진서가)는 작은 물건을 통해 취향을 드러내는 문화적 흐름의 대표선수라 할 수 있다. 2NE1 멤버 씨엘(CL)의 아버지인 이 교수는 책에서 설탕 펜치, 병따개, 로봇인형, 100볼트짜리 일본제 연필깎기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들에겐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물건 하나하나엔 저자의 시간이 켜켜이 들어가 ‘개인사’를 구성할 뿐 아니라 ‘중년 물리학자’라는 공식직함과 엇박자를 이루면서 남과 다른 삶이라는 지향성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낸다.

전문가들은 “개인의 정체성이 어떤 물건을 쓰느냐로 증명되는 데다 경제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서 비싼 물건보다는 ‘이야기가 있는’ 물건에 탐닉하는 동시에 88만 원 세대들은 소품 하나는 ‘잇아이템’으로 소비하려는 트렌드가 결합돼 이 같은 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박동미·최현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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