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도전받는 ‘오바마 독트린’과 한국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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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영/서울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미국은 세계 각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도전과 위기상황들에 직면해 있다. 지친 미국은 힘(power)은 세계 제1위이지만, 외교정책과 전략 및 리더십은 낙제점이라는 혹평을 듣기도 한다. 2001년 9·11사태는 미국의 안보정책과 글로벌 리더십에 근본적 변화를 초래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그해 10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행동에 돌입했다. 2003년 3월엔 이라크를 침공했는데, 1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양국의 내부 상황은 지극히 불안하고 예측하기 힘들다.

부시 행정부의 과도한 해외 무력개입과 경제사정 악화라는 부정적 유산을 물려받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1년 12월까지 이라크 철수를 완료하고 아프간 개입도 끝내겠다는 출구전략을 이행 중이나, 아직도 발목이 잡혀 있다. 미국은 중동의 시리아 내전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 주지 못했고, 제동을 건 러시아에 밀렸다. 미·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력개입을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하고 있다.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하마스 간의 치열한 전투로 1800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세계여론이 들끓지만, 미국은 영향력 한계만을 노정시켰다. 미국은 ‘외교정책 부재’ 또는 ‘리더 없는 세계’라는 혹독한 비판까지 듣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1년 12월 이라크전쟁 종료를 선언했었으나, 최근 수니파 반군 세력 ‘이슬람 국가(IS)’의 공세 저지를 위해 F-18 전폭기를 출격시키는 이례적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최근 이양 팀의 한 미군 장성이 살해되는 불상사까지 발생했다. 존 케리 국무장관이 그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평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 왔다. 강경파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하마스 세력 축출은 물론 지하 터널 파괴를 목표로 하고 있고, 군사적으로 열세인 하마스 무장세력은 패배를 감수하면서까지 정치적 승리를 노리고 있다. 이런 전쟁에서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외교적 역량과 의지를 지니지 못한 미국의 한계만 노출했을 뿐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깊숙이 개입한 러시아에 대한 미·EU의 제재조치도 러시아의 강한 반발과 보복조치에 봉착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과도한 해외개입을 줄이려는 초강대국 미국의 모습이 안쓰럽다.

지난 5월 28일 오바마 대통령은 미 육사 졸업식 치사에서 미국이 무력개입을 축소하고 외교·경제로 글로벌 리더의 위상을 유지하려 한다는 ‘오바마 안보정책 독트린’을 발표했다. 그는 미국의 군사력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며, 미국인의 생명과 생활이 위협받거나 동맹국들이 위험에 처하는 ‘핵심 이익’이 요구할 때만 군사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오바마 독트린은 미국 내 보수·진보 어느 쪽으로 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더글러스 팔 카네기 평화연구원 부원장이 최근 아산연구원 세미나에서 밝힌 바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 정책’(재균형)도 중국의 대국굴기와 대미 도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군사적 성장 덕에 자신감과 자긍심을 지니게 된 중국이 패권국 미국에 ‘새로운 대국관계’를 요구하는 도전장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중국은 역내 경쟁국 일본에 강압적 자세를 취하며, 약한 고리 한국을 회유하고 있다. 미국의 ‘집단자위권 허용’ 환영은 중국 견제와 부담 경감 차원에서 나왔지만, 이웃 국가들의 우려와 한(恨)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미·중 갈등 및 중·일 경쟁 심화는 동북아 질서 안정을 깨고 위태롭게 할 수 있는 화근이 될 수 있다. 북한의 거듭된 미사일 발사와 한·미 양국에 대한 ‘불바다’ 위협 또한 미국의 우려 대상이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미·중·일과의 우호적 관계가 한국안보의 기초이며 기본임을 명심하라고 충고했었다. 미·중 관계 호전이나 악화에 따라, 한·중 관계도 좋아지거나 어려워질 것으로 보았다. 특히 미·중 관계 악화를 ‘재앙’으로 본다. 우리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그에게 말한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며, 서로 이용하고 있다”는 말을 재음미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미·중 간의 갈등완화와 협력증진이 윈윈의 길이며, 동북아 안정과 평화의 길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미·중·일에 적극 설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