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국회선진화法 개정, 국민의 命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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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이화여대 교수·행정학

국회 하면 항상 생각나는 장면이 있었다. 해머로 문을 때려부수고, 의사 진행을 막기 위해 난투극을 방불케 하는 몸싸움을 벌이고…. 그러다 ‘공중부양’을 하는가 하면 급기야는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직권상정하려는 국회의장이나 날치기하려는 위원장의 의사봉을 뺏으려 치고 받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국회의 모습에 식상한 국민의 비등한 여론이 두려워 여야(與野)가 머리를 맞대고 합의해 마련한 제도가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다.

싸우지 말라는 것이 국민의 명령(命令)이라는 주장에 동조한 여당의 쇄신파, 그리고 야당의 온건파가 주역을 맡았다. 마치 이 법만 있으면 국회가 하루 아침에 선진화되기라도 하는 듯했다. 연말의 대선을 앞두고 있던 지난 2012년 5월 12일, 제18대 마지막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된 ‘국회법’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국회선진화법이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은 다수 여당의 일방적 밀어붙이기식(式) 법안 처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온 것으로, 1973년에 만들어졌다. 제16대 국회에서 여섯 차례에 불과했던 직권상정은 17대 29차례를 거쳐 18대에서는 97차례로 급증했다. 직권상정이 이뤄질 때마다 국회에서는 강행 처리하려는 여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야당 간에 몸싸움과 폭력이 발생했고, 이러한 작태는 해외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던,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었다.

국회선진화법의 내용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했다. 천재지변이나 전시·사변 등 국가 비상사태의 경우나 교섭단체 대표와의 합의가 있을 때만 국회의장이 법률안을 본회의에 직권 상정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 둘째,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본회의에서 무제한의 토론(필리버스터)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 의회처럼 ‘말’로 토론을 이어가자는 취지라고 하겠다. 셋째,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중단 결의가 없는 한 회기 종료 때까지 토론을 이어갈 수 있다. 국회 선진화법으로 국회 내 다수당이라 하더라도 의석수가 180석에 미치지 못하면 예산안을 제외한 법안의 강행 처리는 불가능하다.

정말 좋은 취지의 국회법 개정이지만 우리 정치 현실에 적용됐을 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연구나 분석이 전혀 없이 전격적인 도입이 이뤄진 것이다. 결과는 우리가 제19대 국회에서 경험하고 있는 그대로 식물국회로 나타나고 있다. 국회가 대화와 타협의 관행을 이어가게 되면 선진화법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만 현재와 같은 적대적인 여야 관계에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기본으로 돌아가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한다. 여당의 국회선진화법 개정안 마련에 대해 야당에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시도라는 반응이다. 무쟁점법안의 신속 처리, 원로회의를 통한 쟁점법안의 권고안 마련 등 법안의 효율적 처리에 방점이 찍힌 개정안은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발목잡기식 법안연계 협상 방식은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현실에 맞는 수정안이 마련돼야 한다. 이러한 미션이야말로 국민의 명령인 바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여야 지도부는 머리를 맞대고 또 한번의 대타협을 이뤄내야 한다. 오늘의 여와 야가 내일의 여와 야가 아닐 수 있으며 국회는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논어의 ‘안연편(顔淵篇)’에 따르면 공자는 ‘정치는 바로잡는 것이니, 위정자가 통솔하기를 바른 것으로 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라며 도덕정치를 강조했다. 오늘의 여야 모두에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