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곳 없는 아이들에게 집을>13세 예슬이 “내방 안바라요… 변기라도 있었으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무너질듯… 지난 12일 전북 익산시 금강동에서 김예슬(가명) 양이 세 살배기 동생 경수(가명) 군과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것만 같은 판잣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munhwa.com

“제 방이요? 그런 것 말고, 여름에 태풍이나 장마가 와도 지붕이 날아가거나 물이 떨어지지 않는 집에서 살고 싶어요. 한겨울에는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해보고 싶고, 화장실에 변기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쉿, 엄마한테는 비밀이에요.”

전북 익산시 금강동에 위치한 판잣집에서 만난 13세 김예슬(가명) 양은 ‘침대와 책상이 있는 자기방’을 갖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예슬이에게 필요한 것은 레이스가 달린 침대와 자신만의 공간이 아닌, 그저 안전하게 가족들과 쉴 수 있는 소박한 집이었다.

지난 12일 만난 예슬이의 온몸은 벌레에 물린 듯 울긋불긋했다. 얼마나 긁었는지 하얀 피부 위를 덮고 있는 검붉은 딱지는 예슬이의 고통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런 증상은 예슬이의 동생인 5세 준현(가명) 군과 3세 경수(가명) 군도 마찬가지였다. 예슬이는 “여름만 되면 개미와 바퀴벌레, 지네 같은 것들이 나와 나랑 동생들을 마구 문다”며 “엄마가 가구 밑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벌레들 때문에 올해는 가구 밑 틈새를 테이프로 모조리 막아버렸는데도 소용이 없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수풀 한가운데 위치한 예슬이네 판잣집은 지어진 지 벌써 35년이 지났다. 현관문을 지나 마루로 들어가자마자 내려앉은 천장이 눈앞을 가렸고, 키 155㎝의 예슬이 조차 허리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예슬이의 엄마 김모(44) 씨는 “매년 태풍과 장마가 올 때마다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한 지붕이 이제는 예슬이의 어깨높이까지 내려왔다”며 “안 그래도 좁은 집이 더 좁아 보인다”고 말했다. 예슬이는 3평 남짓한 방 두칸에서 엄마, 아빠, 그리고 다섯 명의 언니, 오빠, 동생 등 8식구가 부대끼며 생활하고 있다.

예슬이는 태풍이 올 때면 약한 슬레이트 지붕이 날아갈까 봐 마음을 졸인다. 예슬이는 “올해도 태풍이 온다고 해서 엄마와 함께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에 올라가 벽돌을 얹어놓느라 비를 홀딱 맞았다”면서 “그래도 태풍이 올 때마다 벽에 자꾸 금이 가고 천장이 흔들려 무섭기는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전선은 벽의 내부가 아닌 외부로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얼키설키 엮여서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합선으로 인한 화재 위험성도 높아 보였다. 예슬이의 엄마 김 씨는 “지난 달에도 합선으로 불꽃이 튀면서 집안 전체가 정전이 됐다”며 “전선이 오래돼 피복이 삭아 합선사고가 점점 잦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뿐 아니라 위생도 예슬이와 동생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다. 예슬이 동생 준현이는 “(내려앉은) 천장에서 쥐똥이 자꾸 바닥으로 떨어진다”며 “바퀴벌레가 그릇하고 칫솔 위에 있어서 먹기도 씻기도 싫다”고 투덜댔다. 방에는 A4용지 만한 작은 창이 나 있지만 환기 및 채광 상태가 안 좋아 벽에 곰팡이가 잔뜩 슬었고, 벽지가 떨어지면서 판자가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예슬이가 집에서 가장 싫어하는 곳은 바로 변기 조차 없는 재래식 화장실. 예슬이 엄마는 “비가 오면 배설물이 넘치고 목욕탕 바닥 부식이 심해진다”며 “한겨울에는 배설물이 얼어 퍼내지도 못하고 악취만 진동한다”고 설명했다.

여름을 이기고 겨울이 와도 예슬이의 고통은 마찬가지다. 예슬이네 가족은 보일러 없이 연탄난로에 의존해 겨울을 난다. 연탄난로에서 발생한 가스가 스며드는 또 다른 작은 방은 아예 사용조차 못하고 있다.

예슬이는 “한겨울에도 따뜻한 물로 씻어본 적이 없어요. 양치질을 하려고 입안에 수돗물을 물면 입안이 얼얼해지면서 치아가 다 얼어버리는 기분이에요”라며 엄마가 듣지 못하게 하려는 듯 조용히 속삭였다.

예슬이 형제들의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고 있지만 예슬이네는 거주지 개량이나 이사 등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일용직 노동을 하던 예슬이의 아버지는 지난 2008년 교통사고로 오른쪽 발뒤꿈치뼈가 으스러지면서 일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어머니는 어린 아이들을 돌보느라 일자리를 구할 여유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월 140만 원씩 지원되는 정부보조금은 월세(5만 원)와 공과금, 교육비, 식구들의 의비·식비를 대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주택개량을 위해 민·관단체에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예슬이네가 부담해야 할 3000만 원의 돈을 마련하지 못해 매번 지연되고만 있다.

예슬이 엄마는 “예슬이가 한 번도 친구를 데려온 적이 없다”며 “아이들이 공부할 공간이나 방은 바라지도 않고, 그저 아이들이 클 때까지 안전하고 깨끗한 곳에서 먹고 잘 수 있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익산 = 김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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