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 뿌려놓고… 버젓이 ‘유기농’ 인증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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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저녁 경기 용인시 한 대형마트의 농산물 코너. 기자가 방문했을 때 장을 보러 나온 맞벌이 부부들과 주부들이 진열된 적양배추와 적상추, 표고버섯 등 농산물을 고르고 있었다. 진열장엔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산물과 일반 농산물이 구분돼 놓여 있었다. 상식적으로 친환경 상품이 건강에 더 좋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좀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친환경 상품을 선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만난 소비자들은 친환경 농산물을 오히려 불신하며, 친환경 인증 무용론까지 제기했다.

매장에서 만난 주부 김혜경(43) 씨는 “그동안 친환경 농산물이 실제론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어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며 일반 적상추를 카트에 담았다.

장연주(여·36) 씨는 “차라리 대형마트에서 계약재배 농가를 통해 자체 브랜드(PB) 형태로 출하한 상품이 더 믿을 만한 것 같다”며 “과거엔 건강에 좋다는 생각에 소비자들이 비싸더라도 친환경 농산물을 선택했지만 이제 친환경 인증 마크를 보고 농산물을 고르는 주부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대형마트에서 취급하는 친환경 농산물들은 일반 농산물보다 최대 50% 가격이 비쌌다. 친환경 ‘무농약’ 인증을 받은 적상추 150g의 가격은 2380원이었지만, 일반 적상추는 이보다 33% 저렴한 1780원이었다. 표고버섯의 경우 한 봉에 3980원으로 가격이 같았는데, 친환경 ‘유기농’ 상품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버섯 6개가 들어 있었고 일반 상품엔 같은 크기의 버섯 11개가 들어 있어 실질적으로 50% 가까이 가격 차이가 났다. 브로콜리의 경우도 친환경 ‘무농약’인증을 받은 상품은 200g 한 봉에 4780원이었던 반면, 같은 중량의 일반 상품은 4280원으로 500원 저렴했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농산물을 구매할 때 상품 겉면에 친환경 인증 마크가 찍혀 있으면 해당 상품이 일반 상품보다 건강에 좋겠다고 생각하고 가격이 좀 더 비싸더라도 제품을 구입하는 일이 많았다. 이처럼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산물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증가해 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친환경 농산물 시장 규모가 올해 3조1373억 원에서 오는 2020년엔 7조4749억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친환경 농산물이 정부로부터 친환경 인증업무 위탁을 받은 민간 인증기관들의 부실심사와 함께 일부 농가들의 비양심적인 행태까지 부각되면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 소비자들과 접점에 있는 대형마트들도 친환경 인증 자체를 신뢰하지 못하고 상품 도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거나 계약재배 농가를 통해 자체 상품 출시를 늘리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21일 농식품부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친환경 인증은 농업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줄이고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 알권리 충족을 위해 지난 2001년부터 시행돼 왔다. 인증 종류는 크게 3가지로 ‘유기농’ ‘무농약’ ‘저농약’ 인증으로 나뉘며 각 농가는 자신들의 재배환경에 대한 서면 및 현장심사를 거쳐 인증을 획득하게 된다.

유기농 인증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생산된 제품이고, 무농약 인증은 농약은 사용하지 않고, 화학비료는 기준치의 3분의 1 이하를 사용했다는 의미다. 저농약 인증은 농약 및 화학비료를 기준치의 절반 이하만 사용했다는 뜻이다. 이들에 대한 인증은 농산물품질관리원 및 76개 민간 인증기관이 맡고 있으며 제도 도입 이래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수는 올해 6월 기준으로 10만5680호에 이른다.

하지만 정부가 인증업무를 민간 인증기관들에 위임 및 확대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민간 인증기관들이 수수료 수입에 급급해 심사를 부실하게 진행하는 바람에 친환경 인증을 받아선 안 될 농가들이 인증을 받는 일이 빈발했다. 2001년 도입 당시 4678호에 불과했던 인증 농가수가 7년 만에 17만2553호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또 일부 농가들은 친환경 인증을 받으면 이미지 제고효과와 함께 가격을 좀 더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노려 농약을 사용하고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위장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농산물품질관리원이 7월 30일 친환경 인증 농가 및 민간 인증기관을 대상으로 인증기준 및 인증절차 준수 여부 등에 대한 상반기 특별단속을 실시한 결과, 제초제 등 유기합성농약을 사용하다 적발된 친환경 농가만 3563개소에 달했다. 이들 농가의 친환경 인증은 취소됐지만 그동안 이들 농가에서 재배된 친환경 농산물이 유통된 책임에 대해선 어느 누구에게도 물을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이 인증 자체를 신뢰하지 못하고 친환경 농산물에 오히려 등을 돌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한 대형마트의 경우 올해 초부터 친환경 인증을 받은 채소 10종과 과일 8종을 도입했지만,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의미 있는 매출이 나오지 않는 바람에 추가 도입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들로부터 ‘친환경 농산물 무용론’까지 거론되자 정부는 3월 24일 법 개정에 착수, 9월 25일부터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시행한다. 이 법안의 시장 안착 여부가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 신뢰 회복의 중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에 따르면 주식회사 등 영리법인들이 영리 위주의 부실 인증을 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비영리기관과 생산자 단체 위주로 인증기관을 지정하고, 고의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인증을 승인한 경우 단 1회만 위반해도 인증기관으로의 지정을 취소하고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농식품 분야의 전문 자격증을 갖춘 사람에 한해서만 인증심사원 자격을 부여해 인증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노기섭 기자 mac4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