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미 기자의 컬처 톡>‘동경가족’과 ‘서울가족’, 누가 더 잔인할까

“언제까지 머무실까?” 아들과 딸은 상경한 부모님이 부담스러워 ‘대책 회의’를 엽니다. 홀로된 아버지를 걱정하는 자식들에게 “신세지지 않겠다”고 말하는 순간 며느리와 딸은 안도합니다. 10년 만에 만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다가 “자식은 마음대로 되질 않더군”하고 읊조립니다. 익숙합니다. 내 이야기 같습니다. TV 드라마에서 자주 본 기억도 있네요. 바로 1953년과 2013년, 일본의 한 평범한 가족의 모습입니다. 60년이라는 시차가 있지만 노부부의 짧은 여정을 통해 ‘해체된 가족’을 그려내는 서사는 변함없습니다. 다른 듯 ‘같은’ 두 영화 ‘동경가족’과 ‘동경 이야기’입니다.

‘명량’ 신드롬 속에서 선전하고 있는 작은 영화,‘동경가족’을 보았습니다. 일본 3대 감독 중 한 명인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1903∼1963)의 1953년작 ‘동경이야기’를 리메이크한 것인데요. ‘황혼의 사무라이’로 잘 알려진 야마다 요지(山田洋次·83)가 메가폰을 잡았으니 거장이 거장에게 오마주(경의의 표시로 바치는 것)한 셈이지요. 영화는 잔잔하지만 잔인합니다. 작은 섬에 살고 있는 노부부가 대도시의 자식들을 찾아갑니다. 큰아들과 딸, 그리고 막내아들 집을 옮아다니며 ‘부랑자’신세가 됩니다. 그러면서 크고 작은 일이 벌어집니다. 의사인 큰아들은 응급환자가 생겼다며 가버리고, 딸은 ‘효도’랍시고 고급 호텔로 부모님을 내몹니다. 막내아들은 누나의 성화에 부모님과 관광에 나서지만, 불만이 가득합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딸과 싸우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멈춥니다. ‘일상적 소홀함’ 이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 순간입니다. 아, 스포일러(내용을 미리 밝히는 행위)는 여기까지.

가족 소재 영화 중 가장 세계적인 게 ‘동경이야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경제 부흥기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최근 한 영국 잡지에서 감독들이 꼽은 ‘최고의 영화’ 1위에 선정되었습니다. 디지털로 최근 복원돼 특별상영 중입니다. 두 영화 사이에 정확하게 30년의 시차를 두고 존재하는 ‘가족 게임’(1983)도 흥미롭습니다. ‘실락원’의 모리타 요시미쓰(森田芳光·1950∼2011)가거품경제가 극에 달한 시기, 일본 중산층 가정이 겪는 위기를 그린 것인데요, 성적 지상주의, 물질 만능주의, 개인주의가 주인공 부부와 두 아들, 그리고 가정교사의 관계속에 녹아듭니다.

일본 유학중에 이 영화를 봤다는 한 교수는 당시 큰 문화 충격에 빠졌다고 하지만 ‘동경가족’에는 이질감이 없습니다. 2013년의 일본 사회가 놀랍도록 한국과 닮아있다는 증거겠지요. 어쩌면 앞으로 나올(것이라 예상되는) ‘서울가족’이 훨씬 더 처참하게 ‘가족’을 무너뜨릴지도 모릅니다. 예고편이 궁금하면 추석을 앞두고 오는 9월 2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한국영상자료원의 ‘그렇게 가족이 된다’ 특별전을 추천합니다. ‘가족의 탄생’ ‘고령화 가족’ ‘걸어도 걸어도’ 등 한국, 캐나다, 일본의 2000년대 가족영화 5편이 상영됩니다.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