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예방할 수 있다>청소년 10여명, 자살 결심 친구 위한 ‘환송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8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라이프호프 기독교 자살예방센터에서 한 여학생이 상담전문가로부터 우울증 증세 등에 대해 상담을 받고 있다. 정하종 기자 malo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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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휴일이던 지난 15일 한강 나들이에 나섰던 장진원 ‘라이프호프 기독교 자살예방센터’ 사무총장은 예사롭지 않은 장면을 목격했다. 한강공원에는 밴드 동아리로 보이는 10여 명의 청소년들이 모여 기타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음악에서는 청소년 특유의 발랄함이나 경쾌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슬픔이 느껴졌다. 한참을 지켜보던 그가 아이들에게 어렵게 말을 건넸다. 고민하던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 놓기 시작했다. 그들은 “곧 자살을 하겠다는 친구가 있어 그 친구를 위한 의식을 하는 것”이라며 “이런저런 이유로 자살을 생각하는 친구들끼리 모임을 갖고 가끔 이렇게 환송회도 해주고 있다”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장 사무총장은 “삶을 포기하겠다는 위험한 생각을 가진 청소년들이 사회로부터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됐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면서 “아이들이나 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층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주변의 무관심 때문으로,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28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라이프호프 기독교 자살예방센터에서 만난 장 사무총장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A(15) 양과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1년 전부터 우울증에 빠져 학교도 나가지 않고 치료를 받고 있는 A 양은 이날 센터에서 ‘우울증 척도 검사’를 받았다. 검사지에 답변을 적어나가던 A 양은 ‘나는 가치가 없는 것 같다’라는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그렇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문항에 부정적 답변을 이어가던 A 양은 ‘자살충동이 있었나’라는 질문에 펜을 멈췄다. 그는 결국 그 문항을 비워둔 채 검사지를 제출했다. 장 사무총장은 “A 양의 경우 이미 극단적 선택을 여러 번 시도한 전력이 있는 ‘고위험군’ 아이”라며 “조금씩 마음을 여는 단계이기 때문에 섣불리 다가가지 않고 천천히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A 양의 부모에 따르면, A 양은 1년 전 갑자기 말수가 줄고 가출을 하는 등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1년 동안은 학교도 거의 나가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으며 그 정도가 심해져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최근 A 양이 극단적 행동까지 보이자 부모가 A 양을 센터로 데려온 것이다. A 양의 어머니는 “사춘기인 줄만 알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게 아이의 병을 더 키운 것 같다”면서 “1년 동안 혼자 힘들어했을 아이를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이곳 자살예방센터에는 A 양과 같은 청소년 외에도 생활환경이나 우울증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거나 충동을 느끼는 ‘고위험군’의 사람들이 찾아와 상담을 받고 있다. 또 일반 청소년이나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가정의 가족들을 대상으로 자살예방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상담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조성돈 목사는 “당뇨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다”며 “자살은 ‘개인적 질병’이 아닌 ‘사회적 질병’”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조 목사는 “자살예방교육은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기보다 내 주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면서 “우리 모두가 조금씩만 관심을 가지면 자살문제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센터에는 상담자들 외에 10여 명의 학생이 방문해 ‘삶과 죽음의 의미’ ‘친구가 이상징후를 보일 때 대처법’ 등 자살예방교육을 받았다. 교육에 참가한 김모(16) 양은 “사실 자살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 공포감 때문에 교육을 받을 엄두를 못 냈다”면서도 “몇 주 전부터 예방교육을 받으면서 자살문제 해결을 위해선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는 개신교·천주교·불교 등 3대 종단이 설립한 자살예방센터가 운영 중이다. 교리에 상관없이 ‘생명존중’ 사상을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종교계가 국내 자살예방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장 사무총장은 “물질적 도움은 정부에서 채워줄 수 있지만 살면서 느낀 상실감은 주변에서 채워줘야 한다”면서 “종교계를 시작으로 학교나 가정에서도 관련 교육을 활성화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자살예방 전문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