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좁쌀의 空襲

박학용/논설위원

‘치라이! 치라이!’(起來起來·일어나라 일어나라)

중국 국가가 울려 퍼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 기념일인 2009년 10월 1일. 톈안먼 광장에서 펼쳐진 사상 최대의 열병식을 지켜본 전세계 위정자들은 한동안 숨을 죽였다. 미국 워싱턴과 뉴욕까지 족히 날아갈 수 있는 사거리 1만1200㎞ 이상의 ‘둥펑(東風)-31A형 대륙간 탄도미사일’등 중국이 자체 개발한 수백 종의 ‘천하제일’ 무기들이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 넋놓은 이들은 또 있었다. 중국 첨단 무기 기술의 상업용화(化)를 두려워하는 경쟁국 글로벌 기업인들이다.

8월 초 휴가차 여수로 향하는 승용차 안에서 의미심장한 세계 IT업계 소식을 접했다. ‘중국의 샤오미(小米·좁쌀)가 2분기 중국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쳤다.’ 일개 토종기업 ‘좁쌀’이 ‘세 개의 별’ 아니 ‘세계의 별’ 삼성의 덜미를 잡았다니…. 순간 5년 전 톈안먼의 전율이 느껴졌다.

샤오미의 역습을 일시적 반란쯤으로 여길 수 있다. 삼성전자에 비해 아직 ‘애송이’이기에 더욱 그렇다. IT업계가 샤오미 돌진에 눈을 떼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국가 기술을 어느 수준까지 민간에 넘겨줄지를 저울질해온 중국 정부가 이제 이양 기준과 시점을 정해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심증의 단초(端初)가 되기 때문이다.

중국 기초 과학기술의 본격적인 민간 이양은 세계적 관심사다. ‘짝퉁지존’ 오명 속에 절치부심해온 중국 기업이 국가 기술까지 전수받으면 한국을 넘어 단번에 미국 반열에 오를 수 있다. 미국과 유럽국들은 1·2차 세계대전 때 군수산업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일부 기업들은 당시 국가가 습득한 고도의 기술을 물려받아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CDMA 원천 기술을 지닌 미국의 퀄컴과 항공기 제작사 보잉이 그 예다.

샤오미에 주목하는 이유는 또 있다. 스마트폰 제조업체라는 점이다. 스마트폰은 IT제품 중 가장 작고 가벼우면서도 최고의 부가가치를 낳는 보재(寶財). 반도체, 디스플레이, 카메라 등 각 분야의 첨단 기술이 집약된 이 기기를 장악해야 글로벌 IT업계의 ‘황제’가 된다.

중국 IT 기업의 폭풍 성장에는 자국 병기(兵器)들이 한몫했다. 원동력은 방대한 내수시장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되는 스마트폰 10억 대 중 3억 대가 중국에서 팔린다. 부품 경쟁력도 강점이다. 그러나 1등 공신은 역시 중국 정부다. 중국 정부는 일찌감치 IT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삼고 많은 공을 쏟아왔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암암리에 수조 원대의 정부 지원금도 받는다. “좁쌀이 큰 쌀(大米)이 됐네.” 올초 리커창 총리가 레이쥔 샤오미 회장에게 던진 이 농담은 중국지도층의 각별한 IT사랑을 웅변해준다.

중국의 여타 산업 기술 발전도 비약적이다. 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 따르면 미국의 산업 기술력을 100으로 볼 때 한국은 83.9, 중국은 71.4다. 양국 격차를 기간으로 따지면 고작 1.1년이다. 태양광 등 신성장 산업 기술력은 우리보다 한수 위다. 적잖은 산업 분야에서 우리가 일본이 아닌 중국을 추격해야 할 판이다. 오죽했으면 삼성전자 사장이 “졸면 죽는다”고 외쳤을까.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 일등 기업이 새 패러다임의 출연을 무시한 채 현실에 안주하거나 각종 규제에 발목 잡혀 후발 기업에 따라잡힐 때 쓰이는 용어다. 우리 기업들이 바로 그 직전의 형국이다.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아직 일천하다. 창의적 소프트웨어가 나오려면 기존 질서를 깨는 파괴적 ‘혁신 DNA’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스피드, 효율성, 원가 절감 등의 단어에 젖어 있다.”‘삼성과 소니’의 저자인 장세진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 등 전문가들이 던지는 일침이 더 와닿는 시점이다.

중국 정부와 기업은 세계 1위의 산업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 풍우동주(風雨同舟·한 배를 타고 폭풍우를 함께 헤쳐 나가다)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지리멸렬(支離滅裂) 제각각이다. 국회가 ‘기업의 무덤’이 된 지는 오래다.

처변불경 처변능변(處變不驚處變能變).‘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놀라지 않고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고사성어다.‘추월한 자’로 줄달음칠지, ‘추격하는 자’로 허덕댈지…. 기로에 선 한국 경제가 반드시 곱씹어야 할 금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