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풀무치 떼의 내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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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논설위원

중동 사막 지대의 메뚜기들은 어떤 식물이든 잘 먹는 것으로 만족하는 ‘착한’ 곤충이다. 하지만 비가 충분히 내려 식물의 성장이 왕성해지면 악충(惡蟲)으로 돌변한다. 예로부터 사막메뚜기들은 서남아시아나 중국 등지의 농사에 큰 해를 끼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오늘날에도 예멘과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메뚜기 떼 출몰 뉴스가 종종 보도되곤 한다. 많게는 1000억 마리까지도 되는 사막메뚜기 떼는 하루에 자기 몸무게의 2배나 되는 작물을 먹어치우는데, 1t의 메뚜기 떼가 하루에 2500인분의 식량을 먹어치운다고 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농작물을 갉아먹는 풀무치를 포함한 메뚜기류를 황충(蝗蟲)이라고 했다. 날개가 돋아 떼지어 날아다니는 곤충, 곧 비황(飛蝗)이라고도 했다. 황충의 피해는 한반도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멀리 3국시대부터 시작해 고려·조선 시대까지 기록이 끊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특별한 퇴치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늘에 의지하는 게 고작이었다. 논밭의 충해(蟲害)가 극심할 때 그것을 물리치기 위해 민간신앙에서 ‘재해의 신’으로 모시는 포신(？神)께 제사를 올리는 포제(？祭)가 그 일종이다.

최근 전남 해남군 일대 농지를 습격한 ‘메뚜기’의 정체가 드러났다. 메뚜기가 아니라 풀무치라고 한다. 풀무치는 메뚜기목 메뚜기과의 곤충. 1938년 노벨상 수상 작가 펄 벅의 ‘대지’에 나오는 메뚜기도 풀무치다. 한두 마리일 때에는 착한 곤충이지만, 수천 수만 수억 마리로 떼를 지어 인간 영역을 내습할 때면 무시무시한 악충이다. 어윈 앨런 감독의 ‘스웜(The Swarm)’이나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새(The Birds)’ 영화를 연상시킨다.

오래 전 책에서 읽은, 윌리엄 S 바워스 미국 애리조나대 곤충학과 교수의 메뚜기류의 군집화 방지법은 참고할 만해 보인다. 미국 서부 지방의 전나무와 차조기과 나무 등 몇몇 식물의 화합물들이 호르몬처럼 작용해 이들의 거대 군집화를 막아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해충과의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최소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敵)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메뚜기든 풀무치든 그들의 통신 언어와 먹이, 생체 구조와 관련된 곤충학 외에도 유전공학과 작물학 등의 학제(學際)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피해 지역은 넓지 않다 하더라도 국제 곡물가와 연동되는 만큼 범 지구촌의 과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