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곳 없는 아이들에게 집을>화물차 ‘쌩쌩’ 총소리 ‘탕탕’… 불안에 잠못드는 여덟살 민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8월 26일 원민우 군 가족이 경기 포천시 신북면 컨테이너 박스에다 철판과 비닐을 덧대 만든 집 앞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munhwa.com

사람이 사는 집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경기 포천시 신북면의 한 왕복 4차로 국도. 도로 바로 옆 수풀이 우거진 공터에는 초등학생 원민우(가명·8) 군이 사는 무허가 컨테이너 박스가 자리 잡고 있었다. 민우는 지난 2009년 아버지가 도로 공사 부지에 불법으로 직접 세운 이 컨테이너 박스에서 5년 넘게 살고 있다.

지난 8월 26일 찾은 민우네 집은 방 1개와 주방 1개, 거실 1개로 이뤄진 8평(약 26.45㎡)의 하얀 컨테이너 박스였다. 화장실은 컨테이너에서 5m가량 떨어진 공터 부지에 이동식 화장실을 설치해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민우와 민우 아버지 원모(47) 씨, 필리핀 국적의 어머니 아일린 딤존(가명·27), 여동생 원보라(가명·2) 양 등 총 네 식구가 살고 있다.

이곳에서 살기 시작한 뒤 원 씨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어린 민우와 보라의 안전이다. 원 씨는 “잠깐만 방심해도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다가 금세 마당 밖을 벗어나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로 나간다”며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민우가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도로로 나가는 바람에 큰 사고가 날 뻔했다”고 말했다. 원 씨는 이어 “밤에는 차들이 달리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민우와 보라가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깨는가 하면, 밤마다 깊은 잠에 들지도 못한다”고 설명했다.

집이 도서산간지역에 위치하다 보니 위험한 야생동물의 출몰도 잦다. 아일린 씨는 “큰 고라니가 나타나 물을 먹고 가는 경우도 있고, 험악한 멧돼지나 맹독성 살모사도 종종 눈에 띈다”며 “아이들을 집에 홀로 두기엔 불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우네 집 인근에는 포천 육군 8사단의 사격연습장도 위치하고 있다. 원 씨는 “사격연습을 할 때면 총소리에 귀가 먹먹할 정도”라며 “소리는 참을 수 있지만 혹시라도 잘못 발사된 총알 같은 것이 집으로 날아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민우네 집을 방문한 때는 초가을 날씨에 선선한 바람이 부는 시기였지만, 민우네 컨테이너 박스 집은 가을철 직사광선이 그대로 내리쬐면서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원 씨는 “컨테이너 박스 안은 낮에는 찌는 듯이 덥다가 밤에는 냉기가 돌아 민우와 보라가 감기를 달고 산다”며 “하지만 병원에 한번 가려면 버스를 타고 40분을 나가야 해 매번 아이 엄마가 고생을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곳으로 이사온 뒤 10개월 만에 민우가 장폐색으로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그때도 복통을 호소하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까지 가느라 엄청 고생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민우네 집 근처에는 사람이 사는 집을 찾아볼 수 없었다. 포천 시내로 나가는 버스는 2시간에 한 대꼴.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는 민우는 스쿨버스를 이용해 통학에는 큰 불편이 없지만, 친구들과 놀기 위해 친구들이 사는 곳까지 가려면 20분 이상을 걸어야 한다.

원 씨는 본래 포천에서 낚시터를 운영했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아 2500만 원가량의 빚만 진 뒤 이곳으로 이사했다. 그는 “정부의 보조금을 계속 받기 위해서는 애 엄마가 일을 해야 하지만 집 인근에는 보라를 맡길 만한 어린이집도 없다”며 “민우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병설유치원은 만 3세 이상만 다닐 수 있다 보니 이때까지 보라를 직접 돌봐야 하기 때문에 정부 보조금마저 끊길 판”이라고 토로했다.

민우의 사례에서 보듯이 열악한 주거환경이 아동들의 안전과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연구와 보고서를 통해 증명돼 왔다.

미국의 소아과 학술지 ‘피디어트릭스(PEDIATRICS)’에 지난 2005년 실린 한 연구에 따르면 1985∼1997년 사이 안전사고 및 질식·화재·독성물질 등 거주지 관련 사고로 사망한 미국 내 아동 수는 1년 평균 2822명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사고로 인해 사망한 1년 평균 전체 아동수(5103명)의 절반이 넘는 수준이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는 2007년 발간한 ‘아동 빈곤 전망’ 보고서에서 “열악한 주거환경은 5세 미만 아동의 사망률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아동의 사고 및 사망과 관련된 핵심 요소”라고 지적하며 빈곤아동의 안전을 위해 주거환경 개선이 시급함을 강조한 바 있다.

포천 = 김다영 기자

dayoung817@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