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경제, 사회적 기업 1000개 시대>“위안부 할머니들의 ‘존귀함’을 팝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8월 15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텅스텐홀에서 마리몬드가 주최한 ‘소녀의 꽃 함께 피우다’ 행사에 참석한 방문객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사연을 테마로 만들어진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마리몬드 제공

“우리는 모두 존귀한 존재입니다. 존재 자체만으로 귀하고 존경 받아 마땅합니다.”

디자인 상품과 콘텐츠를 생산하는 소셜벤처(Social Venture) 회사 ‘마리몬드(Marymond)’는 누군가의 욕심과 야욕, 폭력에 훼손된 존귀함을 회복시킨다는 기업목표를 갖고 있다.

종이노트, 양말, 휴대전화 케이스, 티셔츠 등 마리몬드가 판매하는 다양한 제품들에 새겨진 화려한 패턴과 그림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창조한 예술작품이다.

윤홍조(28) 마리몬드 대표는 “마리몬드 제품을 통해서 사람들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며 “어린 나이에 위안부 피해자가 되어 불행한 삶을 사셨지만 이분들 역시 어린 시절 꿈이 있었고, 원예심리치료 과정에서 미술활동을 통해 못다핀 꽃을 피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마리몬드 제품은 최근 일부 연예인들이 TV방송에서 선보여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감각적인 디자인과 제품이 담고 있는 스토리텔링의 힘 덕분에 마리몬드 제품은 입소문으로 더욱 퍼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초기에는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제품을 판매했으나 현재는 여러 인터넷 쇼핑몰에 입점해 있다.

이처럼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브랜드지만 아직까지는 직원 6명이 서울 중구 황학동 신당창작아케이트에 15평 남짓한 사무실을 쓰는 소규모 벤처기업이다. 수익금의 상당 부분을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같은 NGO에 기부하는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피해 회복을 위한 경영활동을 벌이는 만큼 일반 영리기업과는 차별화된다. 수익을 극대화하고 기업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존귀함의 회복이라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겠다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윤 대표가 처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 재학 중이었던 2011년이라고 한다. 경영학과 학생이던 그는 지역사회 소외계층의 문제 해결을 위한 비즈니스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학내 동아리에 가입했고, 동아리 회장은 윤 대표를 위안부 피해 할머니 관련 시민단체에 배정했다. 시민단체가 활동비용을 충당할 수 있도록 자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과제가 그에게 주어졌다. 동아리 활동을 취업을 위한 스펙 관리로 생각했던 그에게 당시의 비즈니스 프로젝트는 진로를 뒤바꿔 버린 정신적 충격을 안겨줬다. 윤 대표는 “대기업 취업 밖에 생각 안하던 때였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해 일반인들보다 특별한 인식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 그분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변하기 시작했다”며 “큰 충격과 부채의식이 생겨났고, 1년 반 동안 프로젝트를 수행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대기업 샐러리맨을 꿈꿨던 그는 소셜벤처 회사를 창업하게 됐다. 경영학과를 졸업해 대기업에 취직한 뒤 무난한 삶을 살 줄 알았던 아들이 창업의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게다가 큰돈을 벌 기업이 아니라 ‘존귀함 회복’을 위한 회사를 차리기로 한 그는 부모님의 성원을 이끌어내기까지 더 많은 힘을 쏟았다. 창업 경험이 전무해 막막하긴 했지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예술작품을 상품화한다는 아이디어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소셜벤처 육성사업에 선정된 덕분에 1년간 창업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2012년 10월에는 법인 등록을 마쳤다. 동아리 활동 당시 썼던 ‘희움더클래식’이라는 브랜드명은 지난 3월 새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는 ‘마리몬드’로 바꿨다. 윤 대표는 “예뻐서, 필요해서 어떤 상품을 구입했는데 알고 보니 그 상품에 이런 의미가 숨어있었구나라는 느낌을 사람들에게 주고 싶다”며 “노트나 티셔츠, 휴대전화 케이스 디자인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분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마리몬드의 제품이 갖고 있는 의미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동정심만을 이끌어내는데 그치지 않는다. 윤 대표는 “이분들을 항상 슬퍼하는 위안부 소녀상의 모습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인권운동가로서 각인될 수 있도록 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며 “어린 시절 못다 피운 꽃을 피워서 존귀함을 회복한 할머니들의 삶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응원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리몬드의 올해 목표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스토리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한국어 애플리케이션뿐만 아니라 영어, 일본어 등을 개발해 세계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다. 애플리케이션은 제품 판매보다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스토리와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윤 대표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세계적으로 공개되는 일은 최초”라며 “마리몬드의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돌고 돌아 이처럼 존귀함이 훼손되는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