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애환’ 노래로 드라마로 달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맨 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직장생활의 애환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KBS 2TV ‘개그콘서트-렛잇비’를 비롯해 영화 ‘마녀’와 tvN 드라마 ‘미생’ 등이 직장인을 소재로 다뤄 공감을 사고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MBC에브리원 ‘나인 투 식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tvN ‘오늘부터 출근’

비틀스의 히트곡 ‘렛잇비(Let it be)’에 맞춰 개그맨 송필근이 노래한다. “모두들 초심을 잃지 말라고 해요. 진정 초심을 잃지 않는 건 월급”이라고. 이어 곁에 있던 박은영, 이동윤, 노우진 등이 ‘렛잇비’의 후렴구에 맞춰 “쥐꼬리”라고 합창한다.

바통을 이어받은 개그우먼 박은영은 “우리 회사에는 다양한 서클이 있죠.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회사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다크서클이 생겼어요”라며 “이 서클은 탈퇴도 안 돼요”라고 직장인의 애환을 토로한다. KBS 2TV 개그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코너 ‘렛잇비’의 한 대목이다.

‘렛잇비’는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하는 코너는 아니다. 하지만 관객석 곳곳에서 ‘맞아 맞아’라는 동조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온다.

코너가 끝나갈 때쯤이면 모두가 ‘렛잇비’의 후렴구를 흥얼거리며 팔을 들어 양옆으로 흔드는 제스처를 따라하고 있다. 그 저변에 공감 코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요즘 자주 쓰는 신조어로 ‘웃픈(웃긴데 슬픈)’ 상황이다.

‘렛잇비’를 비롯해 직장인과 직장생활을 소재로 삼은 문화 콘텐츠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사랑 타령 일변도였던 음원 시장에서도 직장인들의 비애를 담은 노래를 만날 수 있다. 지난달 말 컴백한 걸그룹 써니힐의 타이틀곡 ‘먼데이 블루스’는 월요일이 오는 걸 꺼리는 직장인들의 ‘월요병’을 노래한다.

‘금요일만 되면 자꾸 빨리 흐르는 시간, 총알보다 더 더’라는 가사는 짧은 주말을 붙잡고 싶은 심정을 담았고, ‘혼자 해야 되는 일거리도 늘어가는데 이것만 마무리하지, 하나만 더 하고 가지, 나 말고도 많은데 나만 찾는 것 같애’는 쌓여가는 일에 치이는 직장인의 마음을 대변한다.

‘서울 시’로 유명한 시인 하상욱도 가세했다. 실제로 5년간 회사 생활을 했다는 하상욱 시인이 지난달 말 발표한 음원 ‘회사는 가야지’는 ‘회사는 가야지, 먹고는 살아야지, 금요일인 줄 알았는데 오늘이 목요일이라니.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갈까봐 걱정인 게 아냐, 내가 없어도 회사가 잘 돌아갈까봐 걱정인 거야’라는 공감가는 가사로 눈길을 끈다.

써니힐의 소속사 남궁찬 이사는 “데뷔 전 영화관, 마트, 레스토랑 등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멤버 미성이 작사에 참여했다. 써니힐은 지금까지 사랑이라는 보편적 소재가 아니라 차별화된 아이템을 소재로 삼은 곡을 많이 발표했다”며 “‘먼데이 블루스’는 현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 40∼50대 중년층에게까지 공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예능 프로그램은 아예 직장 속으로 들어갔다. 케이블채널 MBC에브리원 ‘나인 투 식스’에 이어 tvN이 연예인들의 직장생활 체험을 다룬 ‘오늘부터 출근’을 20일부터 방송한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인 김성주, 가수 은지원과 로이킴, 모델 이현이 등이 한 기업체의 신입사원으로 5일 동안 실제 직장생활을 체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tvN 측은 “직장생활에 문외한인 연예인들이 실제 셀러리맨의 삶을 경험하며 발생하는 좌충우돌 에피소드와 진짜 직장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드라마와 영화 역시 회사를 배경으로 삼고 샐러리맨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바둑과 직장생활을 결합시켜 지지를 얻은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미생’이 10월부터 tvN에서 전파를 탄다. 지난해 5월 ‘미생 프리퀄’이 한 차례 방송돼 호평받은 데 힘입어 정규 드라마로 편성됐다.

영화 ‘마녀’도 눈에 띈다. ‘오피스 호러(office horror)’를 표방하는 ‘마녀’는 스타가 출연하지 않는 저예산 독립영화임에도 직장생활과 공포를 접목시킨 참신한 기획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는 직장 여성의 모습과 ‘팀장님,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맞물린 포스터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직장과 직장인이 대중문화 콘텐츠의 소재로 쓰인 건 새롭지 않다. 하지만 조직 문화가 치밀해지고 경제적으로 궁핍해질수록 ‘생업’의 터전이라 할 수 있는 직장생활은 고단해진다. 더불어 현실의 피로를 풀기 위해 그들이 가장 쉽게 접하고 소구할 수 있는 여가는 대중문화다. 이 때문에 드라마, 예능, 가요, 영화 등은 직장인들의 생활을 소재로 차용해 공감을 얻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직장 내 딱딱한 위계질서는 반전을 통해 웃음으로 승화시키기 좋은 아이템이다. 또한 요즘 비정규직, 고용 불안 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과거 ‘TV손자병법’과 같은 프로그램이 직장 내에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알려줬다면 요즘은 풍자를 통해 웃음을 이끌어내거나 판타지와 접목시킨 새로운 직장 문화 콘텐츠로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