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뛰어넘은 진화냐 ‘원조’ 우려먹는 표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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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특집프로그램의 키워드는 ‘외국인’ 이었다. 외국인의 시선을 통해 한국 문화를 진단하는 MBC ‘헬로 이방인’과 KBS 1TV ‘이방인’, 외국인 여성과 한국 남성의 데이트를 그린 KBS 2TV ‘나의 결혼 원정기’ 등이 편성됐다. 재미와 의미를 떠나 이들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은 자연스레 JTBC ‘비정상회담’을 떠올렸다. ‘비정상회담’이 종편 프로그램이라는 한계를 넘어 호평받자 아류 프로그램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1등 따라잡기’는 표절 혹은 진화라는 양날의 칼날 위에서 비일비재하게 이뤄지고 있다.

‘비정상회담’이 처음 방송됐을 때 많은 이들이 지난 2006년부터 4년 가까이 방송되며 큰 인기를 누린 KBS 2TV ‘미녀들의 수다’를 거론했다. 출연진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뀌었을 뿐, 한국어에 능통한 다양한 국적자들이 나와 한국 사회에서 겪는 이질감과 자국의 문화를 소개한다는 점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정상회담’은 남성 위주 패널을 배치하며 ‘미녀들의 수다’가 겪었던 성 상품화라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폭넓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시청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자 추석 특집으로 제목도 비슷한 ‘헬로 이방인’과 ‘이방인’이 동시에 등장했다. 특히 ‘헬로 이방인’에는 ‘미녀들의 수다’에도 출연해 뛰어난 미모로 화제를 모았던 일본인 리에가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방송 당시 7.4%의 전국 시청률을 기록했던 ‘헬로 이방인’은 일찌감치 정규 편성이 확정돼 ‘비정상회담’의 대항마로 떠올랐다.

‘헬로 이방인’이 ‘비정상회담’을 베꼈다는 아픈 질책을 받은 MBC 역시 다른 방송사에 영감을 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일밤-아빠, 어디가’가 대표적이다. 육아 예능은 현 방송가의 대세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그 시작은 ‘아빠, 어디가’였고 이 프로그램은 4년 가까이 이어진 ‘일밤’의 침체기를 끊는 역할을 했다. 그러자 KBS 2TV와 SBS는 각각 육아를 소재로 한 ‘해피 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와 ‘오 마이 베이비’를 편성하며 맞불을 놓았다.

‘아빠, 어디가’가 아빠와 자녀의 여행에 초점을 맞춘 반면,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오 마이 베이비’는 부모 모두의 역할을 그리고 있지만, 그 뿌리가 ‘아빠 어디가’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2012년부터는 아이돌 일변도로 흐르던 가요 시장의 물꼬를 막고 가창력 뛰어난 가수들을 조명하며 ‘듣는 음악’ 붐이 일어났다.

그 시발점은 MBC ‘일밤-나는 가수다’였다. 김범수, 박정현, 더원, 윤민수 등 라이브에 능한 가수들의 무대는 안방극장과 콘서트장의 경계를 허물며 가요 시장에서 소외됐던 중장년층을 TV 앞으로 불러모았다. 여기에 경연과 탈락이라는 예능적 요소를 결합시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후 KBS 2TV ‘불후의 명곡2’가 쟁쟁한 가수와 작곡가들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후배들이 그들의 노래를 부르는 오마주 무대를 꾸며 안방극장에 정착하는 데 성공했다. JTBC ‘히든싱어’ 역시 실력파 가수들의 명곡을 다시 음미하고, 경연과 탈락이라는 요소를 담았다는 측면에서 ‘나는 가수다’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비슷한 질감을 가진 후속 예능프로그램은 혹평과 호평을 동시에 받고 있다.

한 차례의 파일럿 프로그램만 방송된 ‘헬로 이방인’은 아직 뚜렷한 개성을 드러내지 못한 채 여전히 ‘비정상회담’의 아류라는 부정적 시선을 받고 있다. 반면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이미 시즌2로 들어선 ‘아빠, 어디가’의 시청률과 인기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불후의 명곡’ 역시 ‘나는 가수다’의 그늘에서 벗어난 지 오래고, ‘히든싱어’는 독립적 프로그램으로 평가받으며 종편 예능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을 구가하고 있다.

KBS 예능국 관계자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완전히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원조 프로그램을 만든 제작진의 노력을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원조 프로그램의 단점을 다듬고 보완한 프로그램을 내놓는다면 이는 단순한 ‘표절’이 아닌 ‘진화’된 프로그램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