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서 가장 위험한 길’ 15년만에 다시 열린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길로 불리며 지난 2000년 폐쇄됐던 스페인의 ‘왕의 오솔길(El Caminito del rey)’이 15년 만인 내년 1∼2월쯤 다시 문을 연다. 스페인 엘로코 협곡에 위치한 109년 된 왕의 오솔길은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과 달리 전혀 ‘아기자기’하지 않다. 깎아지른 절벽 중간에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길인데다가, 그 길조차도 녹슨 철강 구조물 위에 위태롭게 놓여 있는 콘크리트 패널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길은 1905년 근처 과달오르세강 협곡의 수력발전소 건설 노동자들이 물자 수송 및 이동을 위해 ‘임시로’ 만든 길이었다. 1921년 스페인 알폰소 13세가 댐의 건설을 축하하기 위해 이 길을 건너며 ‘왕의 오솔길’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왕이 건넌 이후 80년 동안 스페인 당국은 더 이상 쓸모 없어진 이 길의 유지·보수는 물론 막아놓지도 않아 사실상 방치했다.

문제는 이 길이 ‘위험천만한 스릴’을 즐기는 등반객들에게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일부 등반객들은 왕의 오솔길을 찾아 일부러 깎아지른 절벽 위, 콘크리트 패널이 떨어져 나가 녹슨 철골만 남은 곳을 골라가며 도보 여행을 즐겼다.

16일 여행 잡지 트래블에 따르면 약 20명이 왕의 오솔길을 걷다 추락사했으며, 1999∼2000년 사이에는 5명이 연달아 사망했다. 결국 2000년 스페인 당국은 해당 길을 ‘폐쇄’했다. 왕의 오솔길에 무단 침입하는 사람들은 600유로(약 803만 원)나 되는 벌금을 물어야 했다.

하지만 일부 등반객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찾아 왔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길’로 불리며 인기몰이까지 하게 되자 스페인 당국은 이를 정비한 뒤 ‘덜’ 위험하게 만들어 관광 상품화 하기로 결정했다. 오랜 폐쇄 끝에 지난 2011년 왕의 오솔길의 행정구역인 말라가주와 안달루시아주 의회는 220만 유로에 달하는 왕의 오솔길 복원 계획을 승인했다.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은 당시에도 많은 예산이라고 생각하고 ‘큰 맘 먹고’ 결정한 것이었지만, 16일 가디언에 따르면 최근까지 사용된 예산은 500만 유로에 육박한다. 약 500t의 철강을 들여 철골 구조물을 교체했으며, 콘크리트 패널 대신 튼튼한 나무 패널을 사용해 약 4㎞에 달하는 왕의 오솔길을 복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약 70% 정도가 완공된 상태다.

텔레그래프는 “벌써 많은 등반객들이 왕의 오솔길 재개장을 기대하고 있다”며 등반객들의 높은 관심을 보도하기도 했다.

스페인 당국은 개장 후 3개월까지는 등반객들에게 왕의 오솔길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지만, 그 이후부터는 출입 인원을 제한하고 적정한 요금을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길은 스페인의 다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길’인 산티아고 순례길과 더불어 스페인 관광 산업과 경제 발전에 동력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뉴욕타임스(NYT)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스페인 관광 산업의 가장 활발한 부분”이라며 “스페인의 다른 경제 분야는 침체되고 있지만 순례길을 통한 관광 산업은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지역 경제 발전까지 견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산티아고 순례길 인근 민간 숙박 시설들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호텔과 경쟁할 정도로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스페인 당국은 산티아고 순례길 이외의 공식 도보 코스를 더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스페인 관광객은 6060만 명이며 이 중 약 21만5880명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았다. 관광 당국은 올해 말까지 작년보다 더 증가한 24만 명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후연 기자 leewh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