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아시안게임의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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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수/논설위원

스포츠 현장은 곧 사회의 축소판이다. 아시안게임 경기장도 승부를 넘어 인간 의지의 무한한 가능성과 투혼, 페어플레이 정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광장이다. 45억 아시아인들의 축제인 2014 인천아시안게임이 19일 막을 올린다. 가슴 속 타임캡슐에 깊이 묻어뒀던 아시안게임의 기억을 다시 꺼내보는 것은 우리의 저력을 재확인하는 길이다. 수많은 선수들이 아시아를 제패했을 때 눈물로 뒤엉키며, 뜨겁고 가슴 떨리던 감동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잊어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메달 순위보다 역경을 이겨낸 선수 개개인의 땀방울이 더 주목받고 있다.

‘아시아의 마녀’ 백옥자 선수는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투포환에서 14m75로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여자선수로는 첫 금메달이었다. 1978년 은퇴한 백 선수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 복귀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5세였다. 나이·체력의 벽을 단숨에 뛰어넘은 인간 승리였다. 1986년 아시안게임 육상 중장거리에서 당시 17세였던 임춘애 선수는 3개의 금메달(800m와 1500m, 3000m)을 휩쓸었다. 당시 돈이 없어 라면만 먹었다는 ‘라면 소녀’ 스토리까지 더해졌지만 임춘애는 최근 그것은 근거없는 소문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혜성처럼 나타나, 가냘픈 몸으로 바람을 가르던 소녀의 투혼은 온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그 기록만으로도 임 선수는 우리의 우상이기에 충분하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남자농구 대표팀은 역전을 향한 박진감 있는 드라이브와 돌격의 신선함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결승에서 한국은 중국에 13점이나 뒤져 패색이 짙었다. 경기 종료 17.7초 전 문경은의 3점포로 88-90으로 숨가쁘게 따라붙았다. 현주엽이 4.7초를 남기고 골밑 슛을 성공시켜 동점. 한국은 연장전에서 2점차로 승리해 20년 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온 국민의 가슴에 터질 듯한 환희를 안겨준 승전보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5개월. 온 국민이 우울하다. 힐링이 필요하지만 이젠 감격하는 법조차 잊어버린 듯하다. 아시안게임 한국 대표팀은 세월호 참사와 경기 침체로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에게 다시 설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줄 수 있다. 오랜 세월 과학적 훈련과 자기 극복을 거쳐 경기에 도전하는 우리 선수들이 정정당당한 스포츠 정신이 무엇인지 다시금 보여주길 기대한다. 정치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소중한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