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대론 안된다>安도 못 넘은 ‘계파 장벽’… 운동권·시민단체 外엔 진입 차단

낡은 정치틀을 깨고 정치 혁신을 추진할 참신한 인물들의 정치권 수혈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현재 정치권이 안고 있는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치권 물갈이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다 수혈된 인물들도 기존 정치문화에 물든 ‘겉만 신진’ 인물이 대부분이어서 ‘그 밥에 그 나물’인 정치권의 구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새 인물 등용문인 각 당의 공천작업이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에 치우치면서 재야시민단체 출신 중 ‘막말’을 일삼는 이들이나 정치적 중립이 필요한 정국 사건에 연루된 인물이 입문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는 실정이다. 정치권의 엉망 충원·재생산구조는 만신창이 정치를 재생산하는 도구로 변하고 있다.

새로운 대안 세력 부재는 여당보다 야당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7·30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지역일꾼론을 내세우면서 신진 인물을 대거 공천해 새정치민주연합의 손학규 전 대표,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정장선 전 의원 등 중진들을 꺾었다. 여당이 새 인물 발굴을 통해 ‘젊은 피’를 수혈한 것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당원 교육을 가면 야당은 50대 이상이 대부분이고, 여당에서 오히려 20∼30대 젊은 층이 많이 보인다”며 “야당이 훨씬 늙은 당이 됐다”고 평가했다. 과거 야당의 무기였던 젊음, 참신함이 사라진 것이다.

17대 국회에서 386(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생) 그룹이 대거 영입된 후 야당에는 새로운 세력이나 세대가 영입되지 못했다. 386이 486을 지나 이미 50대로 접어들고 있는데도 이들이 여전히 당의 중추이자, 젊은 층이다. 의원들의 선수를 비교해도 야당이 더 정체됐다. 현재 새누리당은 의원 158명 중 초선 의원 85명(53.8%)으로 절반이 넘고, 재선 의원(38명, 24.1%)까지 포함하면 초·재선이 4분의 3을 초과한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의원 130명 중 초선 의원이 61명(46.9%)으로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재선 의원 역시 27명(20.8%)으로 새누리당에 비해 비율이 낮다. 하지만 4선 이상 의원은 양당이 14명으로 같고, 3선 의원은 새정치연합이 28명으로, 새누리당(21명)보다 많다.

이는 결국 충원 구조의 문제에서 발생한다. 핵심은 공천이다. 7·30 재·보선 당시 금태섭 전 새정치연합 대변인 공천을 놓고 빚어진 당내 갈등은 계파와 끼리끼리 문화가 발현된 대표적 사례다.

우선 계파가 없다면 공천을 받기 쉽지 않고, 새 인물이 들어오더라도 뿌리내리기도 어렵다. 7·30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안철수 의원만 하더라도 계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안 의원의 실패에는 자신의 정치적 미숙함도 작용을 했지만, 민주당 출신들이 안 의원을 당의 자산으로 수용하지 못한 점이 더 크다는 평가가 많다. 7·30 재·보선 공천 과정에서 각 계파들은 끊임없이 당시 지도부를 의심했다.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가 공천을 통해 ‘자기 사람’들을 챙기려 한다는 것이었다. 한 중도파 의원은 “유력 대선 주자였던 안 의원조차 밀려나는데, 누가 오더라도 새로운 세력을 이루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 소속 19대 비례의원을 보면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시민운동 출신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또 당시 공천권을 행사한 친노(친노무현)계와 가까운 인사들이다. 한 재선 의원은 “19대 총선을 앞두고 애써 영입한 유재만 변호사가 공천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민주당의 한계를 절감했다”며 “각 분야에서 능력이 검증된 인사를 모셔오지 못하면 당의 미래는 없다”고 비판했다. 결국 공천에서 보여 온 한계가 당의 활력도 잃게 한 것이다.

그나마 야당에 ‘새로운 피’를 공급하던 시민사회와 학생운동권 역시 더 이상 ‘인력풀’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새정치연합 한 당직자는 “시민사회와 학생운동권에서 더 이상 사람이 없다는 것은 다음 총선부터는 다른 분야에서 다양한 인재를 모셔와야 한다는 뜻도 되지만, 기존의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쉬워졌다는 의미도 된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은 4년마다 반복되는 공천 학살의 악몽을 아직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김무성 대표가 당 대표 취임 이후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개방형 국민 경선)를 도입하겠다고 적극 나선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국회의원 총선거 공천 과정에서 공천 개혁을 이유로 자행돼온 사실상의 비주류 학살 악습을 이참에 끊어버리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 대표 본인 스스로도 공천 학살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는 공개석상에서 “내가 공천 학살의 피해자”라며 “다시는 전략공천으로 장난을 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온 바 있다. 실제 김 대표가 공천에서 탈락했던 2008년 총선 공천은 친이(친이명박)계가 친박(친박근혜)계를 대량 학살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012년 총선에서는 2008년만큼은 아니지만 일종의 보복 학살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일부 친이계 인사들이 당으로부터 공천 탈락 이유를 듣지도 못하고 낙천의 분루를 삼켜야 했다. 하지만 김 대표가 도입하려는 오픈 프라이머리는 인지도가 절대적으로 앞서는 기존 국회의원이 재공천되는 명분만 제공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합리적인 전략공천의 길도 원천적으로 봉쇄함으로써 정치 신인의 등용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은 앞으로 새누리당이 보완해야 할 과제로 보인다.

조성진·김만용 기자 threem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