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응급체계 중요성 커지는데… 국립의료원 원지동 이전 ‘불투명’

세월호 참사, 해외 감염병 국내유입 우려 등으로 국가응급체계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정부가 노후화된 국립중앙의료원의 확대이전을 추진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반대로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국립중앙의료원 등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국립중앙의료원을 서초구 원지동으로 이전하기 위해 지난 2010년 서울시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올해부터 본격 이전을 위해 부지매입계약, 설계 등에 관한 예산 165억 원을 마련했지만 3분기가 마무리되는 현재까지 사업을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서울시와 세부 협의과정에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응급의료 전문가들은 국가응급체계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이전사업의 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서길준(응급의학과) 서울대병원 교수는 “국립중앙의료원 확장이전은 국가 중앙외상센터의 시급성 때문이라도 빨리 진행돼야 한다”며 “올해 예산을 사용하지 못해 불용예산이 되면, 사업이 오랜기간 공전될 수 있어 서울시와 복지부가 빨리 합의하고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갈등의 시작은 복지부가 지난해 말 국립의료원의 이전에 관한 올해 예산을 확정하면서 본격화됐다. 지방선거를 앞둔 중구는 지역주민의 의료공백을 이유로 반대하기 시작했고, 서울시는 중구 측의 의견을 받아들여 복지부에 세부 이행 조건을 제시했다. 서울시와 복지부는 공공의료시설 운영, 근대건축물 보존, 원지동 부지매입 등 세 가지에서 협상에 차질을 빚고 있다.

서울시는 중구의 의료공백 해소를 위해 현 부지에 200병상의 공공의료시설과 장례식장을 남겨두고, 이를 국립중앙의료원이 분원 형태로 운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중구의 병상수 등 의료자원은 서울시 평균보다 높아 의료공백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보존하더라도 국회에서 부대조건으로 제시한 최소 규모의 외래센터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복지부는 공공의료시설의 운영 주체에 대해서도 국가중앙의료기관이 특정지역 주민을 위해 진료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며, 공공의료시설을 유지해도 서울시에서 운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서울시는 국립중앙의료원 한복판에 있는 의사 숙소를 근대건축물로서의 보존을 요구하고 있다. 복지부는 근대건축물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이전비용을 위한 부지 매각에 손실이 불가피하다며 반대하고 있으며, 보존하더라도 옮겨 짓는 것을 원하는 상황이다.

복지부가 서울시에 지불해야 할 원지동의 부지 매입 가격을 두고서도 서울시는 현재의 공시지가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복지부는 공공시설인 만큼 2010년 MOU 체결 당시 공시지가를 원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서울시의 세 가지 요구사항은 사실상 이전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며 “서울시가 특정지역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 국가의료체계라는 큰 틀의 시각에서 협상에 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측은 “중구의 의료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복지부와 계속적으로 실무적인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