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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4년 09월 26일(金)
영조때 홍역으로 한양에서 1만명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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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병을 앓고 있는 듯한 환자와 이를 진료하는 의원의 모습이 담긴 불암사의 조선시대 ‘감로탱화’. 16세기 후반에 이르면 천민들까지도 통상적인 약과 의학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들녘 제공
조선 의약 생활사 / 신동원 지음 / 들녘

“노비들이 병이 났을 때, 약을 썼나요?”

한국과학사, 그 중에서도 한국의학사 연구에 천착해온 신동원 카이스트 한국과학문명사연구소 소장이 최근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흥미로운 대중적 의문 같지만, 이 안에는 많은 인식 변화가 들어있다고 한다. 의사 중심 의약사에서 환자 중심 의약사로의 변화, 정치사 중심에서 사회사 중심으로의 전환, 위로부터의 거대사가 아닌 아래로부터 미시사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이는 저자가 ‘조선사람의 생로병사’(1999), ‘조선사람 허준’(2001),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2003), ‘호환 마마 천연두’(2013) 등을 내놓으며 꾸준히 탐구해온 한국의학사 연구의 기본 방향이기도 하다. 책은 신 소장이 지난 10년간 연구한 결과를 총정리한 것으로 고대부터 20세기 초까지 한국인들이 어떤 병을 앓았고, 어떻게 치료받았으며, 어떤 약을 쓰고, 결국 어떻게 삶을 마감했는지를 복원해낸 한국 의약 미시 생활사이다.

이를 위해 그가 읽어낸 자료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부터 개인의 일기, 조선왕조실록, 퇴계 이황의 ‘퇴계집’, 정약용의 저술까지 방대하다. 그런데 책의 제목이 한국 의약생활사가 아니라 조선 의약 생활사인 것은 한국의약사 전체를 다루지만 그중에서도 묵재 이문건(1495∼1567)의 ‘묵재일기’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의약생활사를 세밀하게 복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상 대대로 벼슬한 현관 집안 출신인 이문건은 41세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 1567년 73세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일기를 썼고, 그중에 11년 11개월 분이 전해지고 있다. 이른바 묵재일기이다. 그는 승정원 부승지까지 지냈지만 1545년 을사사화에 휘말려 성주로 유배를 가게 된다. 그뒤 그는 성주에서 사실상 유의(儒醫) 노릇을 했는데, 묵재일기의 3분의 1 이상이 질병과 의료 관련 내용일 정도로 의약 생활이 풍부하게 기록돼 있다. 자신을 비롯해 가족, 노비, 이웃의 질병과 대응이 적혀 있다. 묵재는 일기에 이들의 병증을 상세히 기록했고 처방명도 밝히고 있으며, 병을 고칠 때 참고한 의서 정보, 주변의 사망 소식도 담았다. 이뿐 아니라 심지어 말, 소, 돼지의 병까지 기록돼 있다.

게다가 지역 의약시술자에 대한 기록은 물론 경상도에서 활동했던 심약(審藥), 의생(醫生), 약상(藥商), 승의(僧醫), 마의(馬醫)와 점쟁이·무속 치료 장면까지 자세히 전한다.

책은 이 같은 묵재일기의 내용을 전하고 해설하며, 조선 향촌 의약 생활 전모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묵재가 아꼈던 손자의 성장사를 살펴보면 조선인들이 얼마나 병에 취약했는지를 알 수 있다. 손자 숙길은 한두 살 때 이질, 세 살 때 학질, 네 살 때 안질, 다섯 살 때 또다시 학질에 이마가 깨지는 사고를 당하고 여섯 살 때 두창, 여덟 살 때는 입병과 귓병, 열한 살 때는 홍역, 열 두서넛 때는 옆구리 근육통, 열여섯살 때는 원인 모를 중병을 앓는다. 이렇게 성장하며 숙길은 열셋에 이르러 공부를 게을리하고, 술을 마시고 들어와 부모의 속을 상하게 하는데, 바로 사춘기 모습이라고 한다. 또 아들 온은 정신 질환에 시달렸고, 묵재 자신도 치질, 복통, 하혈 등을 달고 살았고, 노년에는 백내장으로 오른쪽 눈 시력을 잃는다. 이와 함께 책은 정조시대의 역병 대책을 살피고 정약용의 생애를 병과 의약생활 측면에서 새롭게 풀어낸 뒤, 조선 의약의 근대화와 서양 의약의 도입 과정까지 뻗어간다.

이렇게 한국 의약사를 훑어내린 뒤 저자는 우리 조상들은 ‘죽음이 익숙한 역병의 시대’를 살아냈다고 밝힌다. “어느 누구도 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수많은 조선인들이 돌이 되기 전에 죽었고, 돌을 넘겨도 곳곳에 도사린 역마, 종기, 각종 사고를 헤쳐나가야 했다. 병에 걸려 살아남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인간이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운수소관이라는 생각이 병과 죽음을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세계관이었다. 죽음이 참으로 익숙한 시대였다.” 실제로 책에 따르면 영조대인 1730년, 공포의 역병인 홍역으로 한양에서 1만 명이 사망했다. 당시 한양 인구가 20여만 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20여 명 중 1명이 사망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는 축복받은 삶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삶이란 병과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은 더 커졌기에 오히려 깜깜한 암흑 속으로 들어간 시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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