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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4년 09월 26일(金)
“인생은 네선택에 달렸다” 개인에게만 책임 떠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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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레나타 살레츨 지음, 박광호 옮김/후마니타스

사람들은 너무 쉽게 말한다. “네 선택에 달렸어”, “그건 선택의 문제야” 혹은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야”라고. 이런 표현 속에서 ‘선택’은 마치 만병통치약 같은 존재로 부상한다. 상품을 고르듯, 직업과 배우자에서부터 자기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보는 것.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레나타 살레츨은 이를 ‘환상’으로 규정하고,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인간들을 특징짓는 정신적 징후들을 분석한다. 바로 그 중심에 ‘선택 이데올로기’가 있다. 예컨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데이트나 결혼, 출산이나 양육 등의 문제도 세심히 계획하고 합리적으로 계산해 본 뒤 결정하면 불확실성이나 위험요소를 피해 기대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 분노, 스트레스 같은 감정들도 관리와 선택의 대상이 된다. 이는 멘토와 힐링을 갈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자기계발 열풍을 일으켰으며 ‘선택지’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삶은 불만족스럽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

슬라보예 지젝과 함께 1980∼1990년대 슬로베니아학파(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발전시킨 학파)를 이끌었던 살레츨은 우리가 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생각이 왜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불안하고 탐욕스럽게 만드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그토록 이 관념에 매달리는지, 또 이로 인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 관해 고찰한다. 소비주의나 긍정 이데올로기와 같은 현상적 분석을 넘어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인간 조건에 일어난 근본적 변화를 이야기한다.

책은 선택 이데올로기가 사실 해방적으로 보이지만, 끊임없이 더 나은 선택을 부추기면서 각자의 선택과 그 결과에 엄청난 무게를 지운다고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이데올로기가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관념에 기대고 있어서인데, 살레츨은 “이 관념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게 아니다. 적자생존의 전장과 같은 삶에서 경쟁자를 제거하고 전리품을 차지한다는 관념이 용인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들어서였다”고 말한다. 이는 ‘자수성가형 인간’을 창조했는데, 개인은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과 불안을 떠안게 되고, 현실의 구조적 문제로 인한 실패에 대해서도 자기 잘못이라 치부하게 된다.

중요한 건 이러한 ‘불안’을 먹고 자본주의가 쑥쑥 자란다는 것. 선택 이데올로기는 방대한 자기계발서 시장을 비롯해 다이어트와 성형산업, 컨설팅, 의료산업 등을 발전시켰다. 책에 따르면 1972∼2000년에 미국에서는 33∼55%가량이 자기계발서를 구입했는데, 이는 특히 20세기 말에 빠르게 성장해 1991∼1996년에는 출간이 거의 두 배로 늘었다.

살레츨은 “자기계발 이데올로기는 질병이 개인의 책임이라고 보는 의료 민영화 경향도 부추겼다”고까지 비판하기에 이른다. 그는 “자기계발은 사람들로 하여금 늘 자기 결함에 노심초사하도록 만들었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더 많은 책, 더 많은 멘토에 의존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즉 자기계발이 완화해준다고 믿는 바로 그 부족감과 편집증을 더욱 강화시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결국 이 같은 강박적 태도는 선택의 여지를 거의 남겨두지 않게 된다.

살레츨은 “사람들은 이상적인 ‘선택자(chooser)’가 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고, 선택 이데올로기는 고통에서조차 쾌락을 느끼는 인간의 약점을 이용해 우리 자신을 파괴한다”고 경고한다.

살레츨의 연구가 더욱 의미를 갖는 부분은 ‘선택’이 대부분 타인의 눈에 의한 것, 즉 무의식과 사회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을 정확하게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는 “선택은 사회적이다”며 “사람들은 무에서 정체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대개는 유명인의 삶에서 가져온 대중적 모델을 따르는 경우가 많고,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선택을 지지해주는 수많은 타인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살레츨은 선택 이데올로기가 정작 사회를 변화시키는 선택들에 대해서는 잊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그는 “가난하다는 데 대한 수치심, 경제적 성공의 사다리를 좀 더 올라가지 못한 데 대한 수치심이 사회적 부정의에 대항한 투쟁의 자리를 대체해 버렸다”고 단언한다.

그렇다고 해서 살레츨이 ‘선택의 힘’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가능한 경우도 있기 마련이고, 또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비합리적이고 때로는 해로운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고 말한다. “선택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인간에게 필수적인 능력이다. 개인이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곧 변화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209쪽)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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