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주여성 26만여명… 침체 농어촌에 ‘활력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안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결혼 이주 여성 등을 대상으로 개설한 한국어 강좌의 수강생들이 지난 25일 하트 모양을 그려보이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munhwa.com

농어촌과 수도권 및 지방 소도시들의 풍속도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국내 거주 외국인 200만 명 시대를 맞아 베트남·태국·파키스탄 등 동남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등 구 소련 공화국, 콩고·가나 등 아프리카 출신 결혼 이주 여성들이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농어촌 등에서는 전통문화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가 하면 새로운 활력을 되찾고 있다. 국내에서 26만8000여 명으로 추정되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최근 농어촌 등에 불러일으키고 있는 변화상을 긴급 점검해 보았다.

◆ 전통 밥상과 식습관의 변화 = 다문화 여성이 늘면서 농촌 가정의 밥상이 가장 크게 변하고 있다. 결혼 이주 여성들이 자국에서 먹던 음식들을 한국에서도 자주 요리하는가 하면 한국 음식과 섞어 퓨전으로 만드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10년 전 한국에 정착한 한지혜(42·경북 문경시 산북면 대상리) 씨는 “필리핀 전통음식을 가족 식사나 간식으로 자주 마련하다 보니 마치 고향에서 밥상을 차리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닭가슴살·향신료·필리핀 당면 등으로 만드는 ‘판싯’과 찹쌀·코코넛가루로 만드는 ‘빈웰로스’라는 필리핀 화전을 자주 요리하고 있다. 그는 “시어머니, 남편, 딸 둘과 함께 살고 있는데 처음에는 가족들과 음식 문제로 자주 옥신각신했으나 지금은 가족들도 필리핀 음식을 즐겨 먹는다”고 말했다.

박정미(여·45) 문경다문화지원센터 직원은 “다문화 여성들은 사전에 한국 음식 등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 것 같다”며 “특히 최근 들어 동남아지역 식료품을 국내에서 구하기 쉬워지면서 한국의 음식문화와 결혼 이주 여성 출신 국가의 음식이 다문화가정을 중심으로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하듯 최근 국내에서 태국, 베트남 등의 음식을 파는 식당이 크게 늘어났다.

◆ 이국적인 마을 공동체 형성 = 결혼 이주 여성들이 모국에서 가족과 친지를 불러들여 국내에서 같이 사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특정 국가 출신들로 구성된 마을 공동체까지 생겨나고 있다.

전남 신안군 자은도 부영마을의 경우 캄보디아 출신 다문화가정 4가구가 가까운 거리에 모여 살면서 마을 전체에 큰 활력을 주고 있다. 자은도 다문화가정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김경국(42) 씨는 “우리 집을 포함해 캄보디아 여성을 아내로 맞은 4가구에서 낳은 자녀는 9명”이라며 “아기 출생이 끊겼던 이 마을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에 대해 노인당의 어르신들이 매우 좋아한다”고 전했다. 그는 “4가구 중 3가구는 캄보디아에서 오신 장인·장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며 “일자리 때문에 캄보디아에서 오신 친척들도 6∼7명에 달해 농촌 인력난 해소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특히 동네 어른들을 깍듯이 대하는 등 우리 예의범절을 잘 지켜 주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이들은 실제로 지난 4월에는 면사무소 직원과 노인회 회원 등을 초청해 카레국수 등 캄보디아 음식 4가지를 만들어 대접했다.

◆ 사무직과 전문직 진출 가속화 = 결혼 이주 여성들은 그동안 식당 주방, 공장 등 단순 노동직에서 주로 일했으나 최근에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다문화가족 지원센터 등에서 한국어와 전통문화 교육을 받은 후 바리스타, 공무원, 교사, 방송인, 요리사 등 다양한 직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 1992년에 한국인과 결혼해 경기 양주시에 거주하는 와타나베(여·50) 씨는 주민센터에서 학원 강사로 일하다가 2011년 5월부터는 양주시 여성보육과에서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양주시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운영을 돕고 1300명에 달하는 결혼 이주 여성의 한국 정착을 위해 한국어 및 취업교육, 각종 민원 상담 등을 해주고 있다. 와타나베 씨는 “요즘 이주 여성들은 고학력자, 전문가 등을 중심으로 한국어 교육을 마치면 단순한 노무보다는 전문적인 분야에 취업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에는 10여 명의 이주 여성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부터 매주 고양시 결혼 이주 여성들의 친목모임인 ‘배드민턴 자조모임’에서 배드민턴 연습을 하는 스즈키(29) 씨는 일산초등학교에서 일본어 강사로 일하고 있다. 6년째 안산에 거주하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딜도라(34) 씨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 교육 경험을 살려 연극 배우로 활동하면서 각종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농촌 지역에서도 농사를 전문적으로 짓고 싶어하는 결혼 이주 여성이 늘어나자 경북 예천군에 있는 경북도립대학은 지난 4월부터 매주 화요일 다문화 농가 여성 15명을 대상으로 ‘다문화 농가 여성 소득 창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사회적 약자에 대한 봉사 선도 = 결혼 이주 여성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국 문화를 우리의 전통문화에 접합시키고 알리는 적응단계를 넘어 정착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이들은 실제로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봉사하는 등 우리 사회에 온정을 불어넣고 있다.

필리핀에서 경남 고성군으로 시집 온 필리핀 여성들은 지난 8월 지역 내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다문화 고성 새댁들이 전하는 사랑, 그리고 희망’이라는 주제로 한 달간 순회 봉사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고성 시니어스요양원 등 4개 시설을 찾아 생활인들에게 필리핀 춤 공연도 보여주고 자신들이 배운 네일아트 기술을 이용해 봉사활동도 했다.

2009년 고성의 어촌으로 시집을 온 로에나 베러스 레이어스(39) 씨는 “요양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우리들을 반기고 공연을 본 뒤 고마워해서 봉사활동 기간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며 “지역민들에게 필리핀 문화를 알리는 데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경북도내에는 2012년부터 23개 시·군에서 ‘다문화가족나눔봉사단’이 운영중이며 단원은 모두 500여 명이다.

이상원·오명근·대구 = 박천학 기자 ysw@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