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선생님>‘벽화 봉사’로 배려 가르치고 ‘미술 치료’로 상처 보듬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경기여고의 박경구(가운데) 교사와 학생들이 1일 창고 벽에 직접 그린 천사날개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학생들이 벽화를 그리는 모습. 경기여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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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하남시에 위치한 중중 장애아동 보호시설 ‘소망의 집’에는 몸을 움직일 수 없어 하루 종일 누워 하얀 천장만 바라보는 척추마비 장애아동들이 생활하고 있다. 아이들의 지루했던 일상은 경기여고 학생들이 지난 2010년부터 30회에 걸쳐 300개의 천장 벽화를 그려주면서 즐거운 하루로 변했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표현된 만화 캐릭터 그림들은 아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돕는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경기여고의 박경구(57) 미술 교사는 4년째 학생들과 함께 벽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박 교사는 특기를 살려 마음의 상처가 많은 소망의 집 아이들에게 미술치료도 해주고 있다. 박 교사와 경기여고 학생들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있는 밤골아이공부방에도 지난해 여름 벽화를 그려줬다. 2012년에는 국기원 옹벽에 태권도 경기 모습의 벽화를 그려넣었다. 삭막했던 콘크리트 벽에 그림을 그려 예술적인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덕에 국기원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태권도 홍보도 톡톡히 하고 있다.

학교 내에서도 벽화가 빛을 발하고 있다. 더러웠던 쓰레기장의 창고는 날개 그림 벽화 덕분에 학교 명소가 됐다. 또 정화조 탱크 위 지저분한 공간을 3년 내내 작약과 장미, 튤립이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는 화단으로 바꿨다. 이런 노력 덕에 경기여고는 올해 서울시교육청의 아름다운학교가꾸기 최우수학교로 선정됐다.

박 교사는 “강남 아이들은 이기적이고 입시에만 몰두한다는 편견이 많다”며 “아이들 스스로 편견을 깨고 타인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나눔과 배려의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봉사활동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사람 키가 넘는 큰 벽에 벽화를 그리는 작업은 쉽지 않다. 한여름, 한겨울에 하는 작업은 더더욱 그렇다. 박 교사는 “지난 8월 낡은 중동중학교 담벼락에 벽화 작업을 할 때 벽의 때를 벗기는 데만 하루가 걸릴 정도로 힘들었는데, 아이들이 뙤약볕 아래서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진득하게 벽화를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감동받았다”며 “아이들이 협동해 봉사활동의 목표를 이루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모습을 볼 때 교사로서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벽화 봉사활동을 1학년때부터 해온 2학년 박소영(17) 양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존재라고 느껴져 정말 기쁘다”며 “디자인 관련 학과로 진학하겠다는 꿈도 생겼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아이들의 얼굴을 캐리커처로 그려주며 아이들과 소통하고, 고민 상담도 수시로 해준다. 특히 경기여고에 부임하기 직전에 있었던 서울의 한 마이스터고에는 전교생 대부분이 가정형편이 어렵고, 한부모 가정이어서 아이들이 상처도 많고 학교폭력 등 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박 교사는 전교생의 캐리커처를 그려주고, 남학생들의 머리를 직접 잘라주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수시로 미술치료를 해줬다. 1교시를 시작할 때까지 한 반의 절반도 등교하지 않는 등 불성실한 아이들의 태도를 바로잡기 위해 처벌을 본인의 종교를 통해 받도록 했다. 기독교라면 목사님에게 부탁해 1대1로 붙잡고 기도를 해주게 하고, 불교인 아이들은 스님이 지도를 하는 식이었다. 종교가 없는 아이들은 인근 산에 올라가서 인증 사진을 찍어오는 독특한 벌이었다. 박 교사는 “1회성 처벌을 내리면 행동도 고쳐지지 않고 아이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며 “부모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 주변에 나를 돌봐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글·사진 = 유현진 기자 cworang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