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일 기자의 길에서 만난 세상>여행사 직원들 ‘추억’을 선물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오던 얼음물을 뒤집어쓴 사진이 이제 뜸합니다. 지난 여름 SNS를 뜨겁게 달구던 ‘아이스버킷 챌린지’ 얘기입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아시다시피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색경화증) 치료법 개발을 지원하고 환자들을 돕기 위해 시작된 기부모금 운동입니다. 얼음물을 뒤집어쓴다는 재미있는 퍼포먼스 때문인지 국내에서도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희귀 질병 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나 기부의 의미 대신 유쾌한 놀이나 연예인들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없진 않았지만, 어찌됐든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기부를 일상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유행이 다 지난 아이스버킷 챌린지 이야기를 뒤늦게 꺼낸 건 한 여행사가 루게릭병 환자들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여행 때문입니다. 총매출 2000억 원 규모의 중견 여행사 여행박사는 이달중 루게릭병 환자와 가족 20명을 데리고 일본 규슈지방으로 2박3일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요금의 절반은 직원들이, 나머지 절반은 회사가 내기로 했습니다. 직원과 회사가 힙을 합쳐 루게릭병 환자들을 위한 기부를 한 셈이지요.

이번 기부여행은 여행박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온 한 줄의 사연에서 비롯됐습니다. 글을 올린 이는 지난 2005년 여행박사가 후원한 장애인 해외여행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던 청년이었습니다. 직장에 휴가까지 내고 자원봉사자로 동행했던 그를 여행박사 직원들은 ‘품성 바른 청년’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건장한 청년이었던 그는 최근 루게릭병 의증(疑症) 진단을 받았습니다. 자원봉사자였던 그가 이제 치명적인 질병이 의심되는 살얼음판 같은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몇 해 전 어머니가 같은 병으로 숨을 거둔 뒤 같은 질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고 격었을 그의 고통의 크기가 얼마나 컸을까요. 하지만 그는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스스로도 힘든 상황에서 그는 루게릭병 환자들의 돕고 있습니다. 여행사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그는 “루게릭 환우들과 가족들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여행을 함께 다녀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여행 비용의 부담도 부담이지만 무엇보다 휠체어 전용 차량의 운행 여부, 보행장애인 편의시설 등에 대한 현지 정보 부족으로 환자와 가족이 스스로 여행을 떠난다는 건 엄두도 못내는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여행박사 직원들은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기부금을 전달하는 것보다 더 의미있는 후원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청년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번 여행을 추진했습니다. 루게릭병 환자와 가족에게 이번 여행은 아마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되겠지요. 더불어 여행박사 직원들에게도 이번 여행은 큰 선물이 될 듯합니다. 누군가에게 평생을 잊지 못할 추억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 경험인지 여행사 직원이라면 잘 알고 있을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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