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 기억 안난다 말고 제발 양심껏 진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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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분들, 제대로 진술해 주십시오. 모른다, 기억 안 난다 그만하시고 양심껏 대답하십시오. 그리고 검사님들, 재판장님, 우리 딸 억울하지 않게 끝까지 힘내 주십시오. 이렇게 부탁드리는 것이, 스물여섯 고운 딸을 잃은 아빠가 세상에 남아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7일 오후 6시쯤 광주지법 201호 법정.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임정엽) 심리로 속개된 세월호 선원 재판에서 이준석(69) 선장에 대한 검사의 피고인 신문이 끝나자 안산 단원고 2학년 3반 담임이었던 고 김초원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55) 씨는 재판부의 허락을 얻어 편지글(사진)로 써온 자신의 ‘속내’를 읽어 내려갔다.

재판부는 선원 재판이 끝난 후 매번 희생자 가족들에게 진술 기회를 줬는데, 단원고 교사 유족이 발언한 것은 처음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김 씨는 중간중간 울먹였지만 때로는 단호했고, 끝부분에서는 피고인들과 검사, 재판장에 대한 간절한 당부도 포함시켰다.

김 씨는 “4월 16일 그날은 저희 딸아이 생일날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여기 계신 피고인들은 잘 먹고 잘 주무시고 계시느냐”고 물은 뒤 “저는 4월 16일 이후 불면증에 시달리고 맘 편히 음식도 먹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우리 아이는 스물여섯까지 꽃다운 20대 내내 책상 앞에서 공부만 하다가 꿈 한 번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차디찬 봄바닷물 속에서 다시는 못 만날 곳으로 떠나버렸다”며 “아니, 당신들이 떠나보내게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실컷 놀게 해주고, 같이 좋은 것도 많이 먹고, 더 많이 안아 줄 걸 그랬다”며 회한도 드러냈다.

김 씨는 “피고인들은 죗값, 그게 몇 년이든 그것이 끝나면 언젠가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고, 가족들을 안아볼 수 있겠죠. 저는 이제 다시는 우리 딸을 만질 수도, 안아 줄 수도 없는데…”라며 울먹였다.

피고인 신문을 했던 검사들의 눈시울도 붉어졌고, 일부 취재기자들도 “눈물난다”고 했다. “오늘 재판을 마치겠습니다. 피고인들 데려가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재판장의 목소리도 평소와 달리 떨렸다. 재판이 모두 끝난 뒤에는 유족들의 오열과 통곡, 분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날 재판에서 이 선장이 시종일관 “기억이 안 난다” “정신이 없었다” “모르겠다” 등으로 진술했기 때문에 김 씨가 피고인들에게 “양심껏 대답하라”고 촉구한 것의 울림은 더욱 컸다.

이 선장은 특히 퇴선방송을 한 경위에 대해 ‘오락가락 진술’을 했다. 이 선장은 그동안 “해경 경비정이 10분 후에 온다는 말을 1등항해사(강모)로부터 듣고 2등항해사(김모)에게 퇴선방송 지시를 했다”고 주장했으나, 이날은 “다른 사람을 강 씨로 착각했으나 그가 누구인지를 모른다”고 진술했다. “허상을 본 것 같다”는 말까지 해 유족들의 분노를 키웠다.

광주 = 정우천 기자 sunshin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