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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4년 10월 10일(金)
‘한국의 知’ 실마리 찾기… 日 지식인 생각을 읽다
와다 하루키·김병익 등 사상가·작가·영화감독 양국 140명 400권 추천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한국의 知를 읽다 / 노마 히데키 엮음, 김경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한국의 지(知)란 무엇인가.

‘한글의 탄생’을 통해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세계 문자사에서 갖는 한글의 의미를 탐색한 일본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野間秀樹)는 이 간단치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시도한다. 그가 ‘한국의 지’에 골몰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 일본 내 ‘한국의 지’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일본에서 한국은 ‘지’라는 단어와 붙어 논의된 적이 없다. 영화, 미술, 드라마, 노래 등 한국의 예술과 대중문화는 높게 평가되지만 ‘지’로서 함께 할 대상은 아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쌓은 지적 세계의 결과물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에 ‘한국의 지’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 구체적으로 그는 일본과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한국의 지를 만나게 해준 책을 1권에서 5권 정도 추천하고 이에 대한 생각을 적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상당수의 일본 필자들은 “한국의 지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며 답을 거절했고, 한국 필자들은 “방대한 주제에 걸맞은 글을 쓸 자신이 없다”고 마다했다. 이에 그는 “한국의 지 전체에 대한 책이 아니다. 한국의 지와 스친 순간이 있을 것이니 그 순간을 공유하고 싶다. 한국의 지에 다가가는 소중한 실마리를 얻고 싶다”고 다시 요청했다. 이렇게 해서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소설가 쓰시마 유코(津島里子)·나카무라 후미노리(軸見文則) 등 일본 지식인 94명과 문학평론가 김병익·백낙청, 소설가 신경숙·김연수, 영화감독 이명세 등 한국의 지식인 46명 등 140명의 필자로부터 책을 추천받고 이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노마는 1000통이 넘는 이메일과 전화를 주고 받아야 했다. 책은 올해 초 일본에서 출간돼, 일본의 권위 있는 출판상인 파피루스상을 받았다.

140명의 필자가 추천한 ‘한국의 지’와 스치게 한 책은 삼국유사, 삼국사기부터 이황의 퇴계문집, 김지하·윤동주·신경림의 시집, 박경리·신경숙·한강·김중혁의 소설, 뮤지컬 대본과 다양한 분야의 전문서, 일본에서 출간된 한국 관련책 등 다양하다. 압도적인 추천을 받은 책도 없다. 일본 필자들이 추천한 책은 265권. 중복 추천을 받은 책은 26종에 불과하고, 그것도 대부분 두 사람의 추천을 받은 정도다. 가장 많이 거론된 책은 여섯 명이 추천한 것으로, 엮은이의 저작인 ‘한글의 탄생’이다. 이어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김중혁의 단편집 ‘악기들의 도서관’ 등이 중복 추천을 받았다. 한국 필자가 꼽은 책은 총 135종으로 가장 많이 추천받은 책은 김수영 전집,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4명 추천), 박경리의 ‘토지’, 이상의 ‘정본이상 문학전집’, 이우환의 ‘만남을 찾아서’(2명 추천)이다.

필자들의 글은 2, 3페이지로 짧지만 그 내용은 길이에 비교될 수 없이 여러 겹의 중요한 의미를 보여준다. 한국 독자들로서는 당연히 한국 필자의 글보다 일본 필자의 글에 더 관심이 간다. 이를 통해 우리도 모르는 우리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닌 낯선 타자의 시선으로 본 ‘한국의 지’, 그것도 뒤얽힌 과거사를 가진 일본, 일본 지식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의 지’이다. 여기에 더해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를 지향하고 동아시아에 무심했던 일본의 시선, 1980년대까지 독재에 신음하는 공포스러운 국가라는 이미지, 그러면서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 시민혁명을 이룬 국가라는 평가, 한국에 무관심하지만 늦은 밤에 켜놓은 라디오에서 한국 라디오 방송이 들려올 정도로 가까운 이웃, 한류로 새롭게 일본사회에 등장한 한국 등 복잡한 이미지와 시선들이 엇갈린다. 이중 삼중, 겹겹의 창을 통해 드러난 우리의 모습이다. 이와 함께 흥미로운 것은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발견되는 일본과 일본 지식인의 모습이다.

예를 들어 와다 하루키는 1970년대 군사독재정권과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에 감동한 나머지 이 사람들이 왜 이토록 오래도록 절망적인 투쟁을 지속해왔는지 알고 싶어 한국 책과 잡지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추천한 책은 리영희의 ‘분단 민족의 고뇌’와 김지하의 ‘밥·활인’(오차노미즈 쇼보)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추천한 뒤 오래전에는 일본이 축소지향 문화라고 해석한 이어령의 고찰은 한계를 안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1990년대 이후 일본사회에 만연한 허술한 팽창주의를 보면서 일본이 축소지향에는 독창적이지만, 확장하는 일에는 적성이 맞지 않아 파탄할 것이라는 이어령의 지적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러시아 문학자 가메야마 이쿠오(龜山郁夫)는 어렸을 때부터 유럽만을 동경했기에 한국은 정신적으로 가장 먼 나라였지만 김지하를 통해 한국에 이토록 강한 사람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다고, 문예평론가 가토 노리히로(加藤典洋)는 시인 윤동주를 통해 자신의 동아시아관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또 사상가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는 일본인이라는 존재를 바닥부터 뒤흔들 것이라는 두려움이 명성황후 시해 문제를 직시하려는 자신의 의지를 방해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처럼 책에 묶인 일본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지, 또 그와 스친 순간은 모두 다르다. 지(知)가 갖는 광범위함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하나로 묶일 수 없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 하지만 이런 스펙트럼을 볼 수 있다는 것, 일본이 한국의 지를 바라보는 이 다양함을 만나는 것도 우리에겐 새로운 지적 경험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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