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황병서 명의로 ‘靑-국방위 직접대화’ 제의했었다

북한 권력서열 2위인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지난 7일 대남 전통문을 통해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긴급 단독 접촉’을 제안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북한이 대화 의지가 강하다는 점을 드러낸다. 국방위원회와 청와대간 직접 대화를 제의, 힘있는 고위급들이 만나 복잡한 남북현안을 일괄 타결하자는 노림수도 읽힌다. 남북간 협의를 거쳐 15일 판문점에서는 김영철 북한 국방위원회 정찰총국장과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 간의 군사당국자회담이 열렸다.

이 같은 사실은 16일 통일부 당국자의 브리핑에서 처음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전통문은 ‘긴급 단독 접촉’으로 돼 있었으며 발신인은 황병서, 수신인은 김관진 두 사람으로 돼 있었다”고 밝혔다. 연장선상에서 남북 군사당국자회담에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의 주도자인 김 정찰총국장이 나온 것을 놓고 ‘5·24 대북제재조치’의 해제 조건과 관련한 타협안을 들고 나온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정부가 이번 접촉 후 2차 고위급회담 개최 날짜(30일) 제안 사실을 공개한 것도 타협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폭침사건과 관련해 북 측은 시종일관 자신들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혀왔지만 방향을 틀어 ‘포괄적 유감 표명’ 수준에서 타협방안 모색 가능성을 열어놓고 한국 정부의 속내를 파악하려 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자신들의 소행임은 밝히지 않으면서 두루뭉술하게 과거에 대한 유감 표명과 향후 상호 재발방지 약속 등을 내걸 수 있고 이 같은 유감 표명의 수위를 정부가 어느 정도 선에서 받아들이느냐가 2차 남북고위급 접촉에서도 핵심 의제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로서는 북한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유감 표명을 ‘5·24 조치 해제’와 맞바꾸려 한다는 국민적 반감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이명박정부 때도 남북 간에는 천안함 사건을 넘어서기 위한 논의가 있었던 만큼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북한 국방위 대변인은 2011년 5월에 있었던 정상회담을 위한 남북 간 접촉을 공개하면서 남측이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밝히기도 했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이 남북당국자회담을 설명하면서 ‘의미 있는 대화’라고 언급한 부분 역시 천안함과 관련한 양 측의 타협방안 모색 과정일 것으로 관측된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는 정부 당국자들의 언급을 고려하면 양 측이 진지하게 이 문제를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단순히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 대북 전단 살포 문제만을 가지고 논의하려 했다면 국방부 정책실장과 북한 정찰총국장이 회담에 참가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다.

김영수(정치외교학) 서강대 교수는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천안함 폭침사건의 사과 문제는 남북이 절충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유감 표명은 이명박정부에서도 북한 측이 한 바 있다”면서 “예컨대 ‘남조선 병사가 한미연합훈련을 하다가 죽은 것에 유감이라는 식’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