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는 ‘미스터리’… 책마다 ‘운명’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500년 역사에는 예상치 못한 스타의 탄생, 벼락 출세, 유명 작가의 추락 등 결코 예측할 수 없는 미스터리 같은 일들이 이어진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독자들이 책을 살펴보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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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의 역사 / 프레데리크 루빌루아 지음, 이상해 옮김 / 까치

‘젊은 작가들을 꿈꾸게 하고, 대중의 관심을 고정시키며, 발행인들에게는 북극성 같은 역할을 하는 마술적 용어.’

1928년 프랑스 주간지 ‘정치, 문학(Annales polotiques et Litteraires)’이 이렇게 규정한 것은 19세기 말부터 영미권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베스트셀러’다. 작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고, 아무리 점잖은 출판사들이라도 탐낼 수밖에 없는 열망의 대상인 베스트셀러. 프레데리크 루빌루아 파리 제5대학 교수가 16세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베스트셀러 500여 년의 역사를 추적한 이 책이 흥미진진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베스트셀러가 책으로서의 완성도 혹은 절대적 문학적 가치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일치했다면 좋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매우 순탄하고 예측 가능한, 다소 미적지근한 내용이 전개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베스트셀러 역사에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성공, 자신조차 짐작 못한 벼락 스타의 탄생, 유명 작가의 예상치 못한 실패와 낙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이뤄졌기에 작가의 입장에선 애석하기 짝이 없는 때늦은 열광, 여기에 당대의 열망, 대중의 변덕,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한 부풀리기와 사기극까지 온갖 인생의 롤러코스터와 짐작할 수 없는 책의 운명이 펼쳐진다. 그렇지만 베스트셀러는 결국 책, 저자, 독자의 상호작용이며, 출판기술의 발달, 영화산업, 오프라 윈프리 쇼 같은 책소개 프로그램 등 책을 둘러싼 여러 요인들이 직·간접적으로 작용하기에 이 책은 결국 책에 대한 황홀한 오마주이며, 책과 저자 그리고 독자에게 바치는 흥미로운 헌사이다. 책을,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책 안에 등장하는 숱한 작가와 수백 권의 책 이야기에, 340페이지를 읽는 내내 행복할 것이다.

시작은 16세기 중반. 이때가 되면 유럽 독자 규모가 베스트셀러를 만들 정도가 된다. 문제는 인쇄술의 한계로 양적으로 이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는 점이다. 1548년 스페인에서 인쇄된 당시 베스트셀러 ‘갈리아 전쟁기’의 발행부수는 2250부에 그쳤다. 하지만 그때 인쇄소는 하루에 1250장 이상을 찍지 못했기에 이 책을 모두 인쇄하는 데에는 대여섯 달이 족히 걸렸다. 따라서 당시 베스트셀러는 발행부수보다 얼마나 많은 판본이 나왔느냐로 미뤄 짐작했다. 이를 기준으로 할 때 세계 문학사의 첫 베스트셀러는 1605년 1월 16일 마드리드에서 인쇄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였다. 물론 발행부수는 몇백 부에 불과했다. 베스트셀러 역사의 전환기는 1840년 인쇄술이 발달해 발행부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뤄졌다. 19세기 후반에는 10만 부 베스트셀러는 흔해졌고, 100만 부 달성 기록이 나오기 시작했다. 1936년 6월에 나온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경우 첫 해에 100만 부, 이듬해에 150만 부, 미국에서만 10년 만에 300만 부가 판매된다. 1946년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오늘날 100만 부는 심심풀이 땅콩”이라는 말을 하기에 이른다.

이 같은 시기를 전후해 ‘역대급’ 베스트셀러들이 나오게 된다. 면면은 참으로 화려하다. 보스턴 대형 출판사로부터 모두 퇴짜 맞은 헤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1852년)은 미국 베스트셀러의 신기원을 열었고,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전 세계 동시 발행의 원조가 된다. 이 책은 1862년 4월과 5월에 브뤼셀, 파리, 런던, 라이프치히, 마드리드, 밀라노, 퍼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유례 없는 규모로 동시 출간된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은 1857년 출간 직후엔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다 검찰이 외설로 기소하면서 베스트셀러가 된다. 1946년 4월 갈리마르 출판사는 3년 전 뉴욕 출판사에서 출간됐지만 크게 반응을 얻지 못한 책을 출간하는데, 바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였다. 1950년대, 영화와의 밀월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을 꼽자면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이다. 선데이 타임스 해외취재 부서에서 일하던 이언 플레밍은 영화의 시대를 직감하고 영화를 염두에 두고 소설을 썼다. 1952년 1월 그는 자메이카 골든 아이에서 낡은 휴대용 타자기로 7주 만에 ‘카지노 로열’을 완성했다. 하지만 반응은 지지부진했다. 영화화도 몇 번 결렬됐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행운이 ‘제임스 본드 컬트’를 만든다. 1961년 3월 존 F 케네디가 라이프지와의 인터뷰에서 ‘007 위기일발’이 모든 시대, 모든 장르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열 권의 책 중 한 권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어렵다는 비평을 깨고,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은 너무 어둡다는 비판을 넘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다. 물론 이 모든 기록들을 깬 주인공은 바로 어린 마법사 해리 포터이다. 베스트셀러 역사에서 꼭 기억해야 할 날인 1997년 6월 30일. 무명의 젊은 조앤 K 롤링이 런던에서 전설의 첫 권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내놓는다. 그뒤 성공은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이와 함께 스탕달, 피츠제럴드, 셰익스피어 등 사후에 성공한 작가, 스티븐 킹, 마이클 크라이턴 등 스테디셀러. 이란의 최고지도자 호메이니가 사망선고를 선언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살만 루시디, 댄 브라운, 스테파니 메이어, 파울루 코엘류, 아멜리 노통브 등까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베스트셀러는 미스터리다.’ 500년 역사를 돌아본 저자의 결론이다. 성공의 원인, 작품의 고유한 질, 저자의 재능, 발행인의 노력, 미디어 중계를 샅샅이 해부해도 알 수 없는 미스터리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기술적으로 재현할 수도 없고, 예측은 더더욱 할 수 없다. 모든 책은 그 책의 운명이 있다는 말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