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술에 취해 헤어진 애인에게 전화해…”

“이건 내 이야기이기도 해요.”

그룹 신화의 멤버 에릭(35)이 3년의 공백을 깨고 문정혁이라는 본명으로 돌아와 KBS 2TV ‘연애의 발견’(극본 정현정·연출 김성윤)의 주인공을 맡은 이유다. 이 드라마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전 여자친구를 잊지 못했던 한 남자가 5년 만에 재회한 연인과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대본을 읽으니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어요. 대본이 아니라 그냥 ‘에릭의 이야기’였죠. 아무리 헤어졌다 하더라도 5년간 사랑했던 여자가 나쁜 남자를 만나고 있다면 ‘그 남자는 아니야’라고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태하(에릭 분)가 여름(정유미 분)에게 다시 다가가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죠. 저 역시 술에 취해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태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연애의 발견’이 끝난 후 ‘에릭의 재발견’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아이돌 가수 출신으로 그동안 ‘뭐 타는 냄새 안 나요? 내 마음이 불타고 있잖아요”, “6·25가 왜 일어났는 줄 알아요? (갑자기 키스한 후) 방심해서”라고 손발이 오글거리는 대사로 여심을 흔들며 멋진 역할을 도맡던 에릭은 ‘연애의 발견’에서 담백한 연기로 승부했다. 헤어진 연인을 향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는 차라리 유치한 ‘찌질남’에 가까웠다.

“보통 멜로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예쁘고, 남주인공은 멋지잖아요. 그들을 통해 시청자들이 대리만족을 얻는 게 멜로의 공식이죠. 하지만 ‘연애의 발견’은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을 보여줘요. 달달한 연애가 아니라 치고받는 진흙탕 연애죠. 하지만 실제 연애는 후자에 가깝거든요. 그래서 시청자들이 더 크게 공감한 것 같아요.”

‘연애의 발견’은 사랑 방정식을 알려 주는 드라마였다. 뻔히 알면서도 당하고, 유치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연애의 법칙을 통해 판타지를 깨고 현실을 보여준다. 때문에 이 드라마에 출연한 후 어느덧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에릭에게 “이제는 사랑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이 많이 온다.

“연기를 하면서 계속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을 생각해 봤어요. 각 장면에 제 과거를 대입하며 ‘내가 이랬나?’라고 자문했죠. 그때는 미처 몰랐던 상대방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하지만 또다시 사랑을 시작해도 마음처럼 될까요? 머리로는 알아도 결국 사랑은 시작하고 끝날 때 먹먹해지는 가슴으로 하는 것 같아요.”

그는 에릭이자 문정혁으로 살며 가수와 배우를 오간다. 지금은 아이돌 가수들이 연기를 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에릭의 데뷔 시절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어찌 보면 에릭이 터를 잘 닦았기에 후배들이 좀 더 쉽게 연기에 접근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눈에 띄는 후배 아이돌 출신 배우를 꼽아 달라는 주문에 에릭은 주저없이 영화 ‘변호인’과 드라마 ‘해를 품은 달’ 등에 출연했던 제국의아이들의 임시완의 이름을 거론했다.

“이제는 후배들이 정말 잘해요. 배우와 가수의 경계가 사실상 무너진 것 같아요. 연습생 시절부터 노래와 춤, 연기 등 다양한 것을 배우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방향으로 부각될지 알 수 없죠. 다만 연기를 먼저 시작하면 배우, 그룹으로 데뷔하면 가수라 불릴 뿐이에요.”

아마도 이 이야기는 에릭이 자기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연애의 발견’을 끝내자마자 쉴 틈 없이 곧바로 신화의 새 앨범 준비에 돌입한다. 내년 1월 컴백을 목표로 멤버들과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데뷔 17주년을 맞아 ‘아이돌의 조상’이라 불리는 신화, 하지만 정작 에릭은 “선배 대우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나이와 경력은 별 의미가 없어요. 얼마 전 동 시기에 활동하던 god가 돌아와 반갑지만 그들은 신화의 라이벌이 아니에요. 신화와 god의 라이벌은 서로가 아니라 현재 활동 중인 가장 ‘핫’한 아이돌 그룹들이죠. 때문에 항상 트렌드를 파악하고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우리는 ‘구세대’가 아니라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현세대’입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