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民·軍 차별 육군 야전부대 전차·장갑차·자주포·헬기 등에 보급된 군용 마크의 노벡 휴대용 소화기(FK-5-1-12·왼쪽)와 민수용 노벡 소화기(오른쪽). 민수용 소화기에는 ‘밀폐된 좁은 실내 사용 삼가’ ‘바람을 등져서 방사하고 사용 즉시 환기’ ‘발생되는 가스는 유독하므로 호흡 삼가’ 등의 경고문이 부착돼 있지만 군용 소화기에는 이 경고문이 삭제돼 있다.
육군이 최전방 등 야전부대에 인체에 치명적인 불산(불화수소·HF) 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노벡(NOVEC-1230) 휴대용(수동식) 소화기(消火器)를 보급한 것은 그동안 숱한 전문가와 정부기관을 포함한 전문연구기관들이 ‘밀폐공간에서의 사용은 위험천만하다’고 밝힌 권고를 무시한 조치여서 불안감을 조성시키고 있다. 군의 이 같은 조치는 특히 최근 22사단 총기난사 사건과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 사망사건 등 군 내에서 만연한 사건사고와 맞물려 인권과 인명을 경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전문가들은 “민간 업체의 실험 결과를 토대로 한 주먹구구식 시험평가로 미군 등에서 밀폐된 실내 공간에서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노벡 휴대용 소화기를 보급한 것은 장병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천만한 도박”이라며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주관하는 엄격한 안전성 실험을 통해 안전성을 검증해야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육군은 지난해 말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 기존의 할론(Halon) 휴대용 소화기 대체용으로 친환경 노벡 휴대용 소화기(FK-5-1-12)를 야전부대의 전차·장갑차·자주포·헬기 등 승무원이 탑승하는 무기 내부에 3000여 개를 보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 허용 기준치의 독성가스 최대 1만2000배 배출 = 문화일보가 단독 입수한,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이 외부 연구용역을 의뢰받아 최근 실시한 ‘지상전투장비 소화 약제(藥劑)의 화재 시 독성분석 평가연구’ 인체 유해성 보고서의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수동 분사하는 휴대용 소화기에 들어가는 노벡 소화약제를 2㎏ 분사하는 인체 유해성 실험을 3차례 한 결과 불산가스가 적게는 1154ppm, 많게는 6138ppm이나 검출됐다. 이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불산가스의 작업장 기준치인 8시간 노출시 0.5ppm의 무려 2200∼1만2200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노벡 소화약제는 흰쥐 생존성 3차례 실험에서도 1∼3분에 사망, 9분 이상 생존해야 합격하는 시험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미군이 노벡 소화약제 대안으로 전차·장갑차 등에 보급 중인 친환경 FM-200(분말약제인 중화제·BC를 10% 혼합)은 KICT 실험 결과 같은 조건에서 불산 등 유해가스가 배출되지 않았다. FM-200은 흰쥐 생존성 실험에서도 약 22∼26분을 견뎌 시험기준을 통과한 것과 대조된다.
인체 유해성 실험을 주관한 조남욱 KICT 수석연구원은 “노벡 소화약제의 수동 소화기 인체 유해성 실험에서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불산가스가 생성됐다”며 “밀폐된 공간에서는 사용하기 힘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장착용 자동분사 소화 실험에서는 1초 동안의 짧은 시간에 고속촬영한 결과, 노벡과 FM-200 소화약제의 차이가 인지되지 못했다. 조 연구원은 “노벡 소화약제의 경우 화염과 접촉 시간이 늘수록 불산가스 양이 늘어난다”고 밝혔다.
◆ 인체 유해성 논란 노벡 소화제 왜 보급하나 = 육군이 기존의 할론 휴대용 소화기를 대체하기 위해 인체 유해성 논란으로 미군에서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노벡 소화제를 보급하는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 육군 에버딘 시험센터(ATC)는 2010년 실시한 ‘미국 육군 지상장비 병력 탑승 보호용 화재 소화약제’ 실화(實火)실험 보고서 역시 노벡 소화약제는 화재 접촉시 불산가스를 다량 배출해 인체에 치명적이라고 지적, 전차·장갑차 등 밀폐된 공간에 휴대용은 물론이고, 화재 시 0.2초 내에 자동분사되는 장착용 소화제 사용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2009년 육군 사업제안서는, 군에 가장 많이 보급된 할론 소화액제는 오존층 파괴물질을 규제하는 몬트리올 의정서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규제하는 교토의정서에 따라 2010년부터 사용이 금지돼 친환경 소화액제로 대체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하지만 할론 가스는 생산은 금지됐지만 안전한 새 소화장치가 개발돼 대체될 때까지 ‘할론 은행’ 등을 통해 소화기 등에 재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오는 2015년까지 군용 궤도차량 등을 무조건 ‘전면 교체’해야 한다는 사업제안서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육군은 자동분사 노벡 장착용 소화장치를 개발 중인 A사가 민간 방재실험 연구기관에 의뢰해 자체 실험 절차를 통해 승무원실 성능시험을 통과했으며 승무원의 안전성도 우수하다며 미군 측의 시험 결과와 상반된 결과를 내놓아 논란이 됐다. 육군은 2013년 말 국방기술품질원의 시험평가와 기계화보병사단 전차대대의 성능시험 결과를 거쳐 지난 8월 22일 연구개발확인서를 발급, 내년부터 국산 K계열 궤도장비 등에 보급하기로 결정했다.
◆ 장병 생명을 담보로 한 주먹구구식 시험평가 논란 = 탑승 장병에게 유해한 불산가스를 배출하는 노벡 소화기 보급 논란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국가 공인연구기관에 의뢰해 엄격한 방재실험을 통해 인체 유해성 시험을 거치는 것과 대조된다. 우리는 업체투자 연구개발 사업으로, 민간 업체가 민간 방재 연구기관에 의뢰해 ADD가 엄격한 실험 기준도 제시하지 않은 채 주먹구구식으로 시험 평가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육군에 따르면 휴대용 소화기에 이어 장착용 소화기 개발을 맡은 A사가 민간 방재실험 연구기관인 재시험연구원에 의뢰해 실험한 결과 자동분사 소화장치인 ‘궤도장비 장착용 소화기’가 미 육군의 기준을 차용한 군사요구도 746ppm에 못미치는 159∼746ppm이 검출됐다.
국회 국방위원회 진성준(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측은 “이 역시 산업안전보건법 기준치의 318∼420배로 인체에 치명적이어서 안전성 논란이 일고 있다”고 밝혔다. 진 의원은 지난 14일 국정감사에서 “한국 육군이 미 육군의 기준에 근거해 설정한 산성(불산)가스 발생 기준은 미 육군의 시험평가 조건이나 환경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무작정 차용한 기준으로 과학적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없다”며 “업체 투자 개발로 진행돼 개발업체에 사실상 독점권을 부여한 사업으로 철저한 검증이 필수적임에도 허술한 사업관리와 주먹구구식 시험평가를 한 사업단 전체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필요하다”고 질타했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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