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3주년 특집-해외석학 인터뷰>“북한은 ‘실패한 국가’… 결국, 한국이 흡수하게 될 것”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벨퍼 과학·국제관계연구소 소장인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가 지난 20일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연구실에서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레이엄 앨리슨(74) 하버드대 교수는 한 시간 남짓의 인터뷰 동안에 기원전 5세기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보여줬고, 제1차 세계대전과 동·서독의 통일, 구소련의 해체 및 북한의 미래로 안내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그의 설명과 추론은 분명했다. 주요 2개국(G2)인 미·중 관계의 방향성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설명하는 그의 얼굴에는 대국에 대한 경고도 담겨 있었다. “한국은 북한을 흡수할 것(South Korea will absorb North Korea)”이라는 언급에서는 어떤 전율감도 느껴졌다. 그것은 비효율적 체제는 효율적 체제를 이기지 못한다는 역사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11월 1일 문화일보 창간 23주년을 맞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벨퍼 과학·국제관계연구소 소장인 앨리슨 교수를 지난 20일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 한국은 물론 미국 내에서는 북한 핵 문제 해결방안에 대한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한편에서는 경제 제재와 봉쇄를 통한 강력한 압박을 요구하고, 다른 편에서는 제재 완화 및 대화의 외교적 해결 노력을 선호하고 있는데 평가가 궁금하다.

“학자와 교수로서 나는 대화와 압박의 대북정책 양쪽 모두 실패했다고 본다. 북한은 현재 핵물질 원료인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고, 핵무기 개발을 위한 3차 핵 실험까지 했다. 최근에는 우라늄 농축에도 나서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결국 북한의 비핵화가 목표라고 한다면 지금까지의 대북정책은 성공적이라고 볼 수 없다. 1994년 북한과 미국 간에 맺어진 제네바 합의는 한마디로 북한이 더욱 많은 플루토늄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원치 않는 일을 북한이 하지 말도록 비용을 지불하는 성격이다. 그러나 비용을 치렀는데도 원치 않는 일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실패에 불과하다. 플루토늄 생산 동결, 우라늄 농축 중단 등 북한의 어떤 핵활동도 중단시키지 못했다. 더욱 심각한 부분은 북한의 핵활동 결과로 발생하는 일들은 우리가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취하고 있는 ‘전략적 인내’는 대북정책에서 비효율적이라는 의미인가.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의 본질은 중국 정부를 통한 대북한 압력 행사다. 중국을 통해 북한이 더욱 많은 핵무기를 확보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목적이다. 그것을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또는 ‘전략적 보존(strategic preservence)’으로 부르든지 간에 성공이라고 부를 만한 결과는 없었다. 국가정책 수립에서는 목표가 무엇이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현재 하는 일은 무엇인지에 대한 세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현재의 대북정책은 목표가 북한 핵 폐기인지, 북한 핵 내부 봉쇄인지도 불명확하다. 북한이 더욱 많은 핵무기를 보유할수록 상황은 악화되고, 국제 테러단체들과 다른 나라들로 핵무기가 확산될 가능성도 커진다.”

― 일본에는 핵무기 1000여 개를 생산할 수 있는 핵물질이 있다. 일본이 핵무장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가능한 얘기다. 그리고 그 같은 상황은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확장 억지력을 제공받고 있지만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내부적으로 안보 환경에 대한 의심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미·일 동맹, 한·미 동맹에서 미국의 안보 약속 이행은 확고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겠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이익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이 번져나가 자신들을 위한 결정을 내릴 여지가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나의 최대 고민이다.”

―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한 6자회담이 사실상 정지상태인데,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을 어떻게 전망하나.

“북한은 6자회담을 진행하면서도 핵개발을 지속했다. 북한이 6자회담을 통해서 시간 확보라는 혜택을 얻었다. 그들은 6자회담이 공전하자 장거리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의 도발을 감행했다. 결국 6자회담으로 미국과 한국이 벌어들이거나 빌릴 수 있었던 북한의 좋은 행동은 잠시의 한시적 상황이었다. 6자회담 재개에 노력해야겠지만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북한에 대해 경제적 보상을 제시하면서 북한을 핵 폐기로 유도하는 점진적인 노력은 계속 필요하다고 본다.”

―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오는 11월 10∼11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제22차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직후 미·중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인데 신형대국관계로 형성된 미·중 관계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최근의 연구 결과들을 보면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미·중 관계는 훨씬 악화됐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시 주석은 2012년 서니랜즈 미·중 정상회담에서 신형대국관계를 제안했고 미국도 이를 받아들였다. 베이징과 워싱턴, 서울과 도쿄(東京)의 연구자들은 신형대국관계의 긍정적 발전을 기대하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떠오르는 강대국과 기존 강대국과의 관계는 종종 마찰을 빚었다. 그리스 역사가인 투키디데스가 기원전 5세기에 집필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강대국의 관계를 기록했다. 그리스 문명의 중심으로 떠오른 아테네는 기존 강자인 스파르타에 주도권을 빼앗기는 상황을 우려해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BC 404년)을 일으켰다. 그는 30년간 지속된 전쟁으로 스파르타와 아테네 모두 쇠락의 길을 걸었다고 기록했다. 이 같은 강대국들의 관계를 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강국과 기존 강국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1차 세계대전을 보더라도 떠오르는 독일과 기존 강국인 영국 사이에서는 전쟁이 발발했다. 시 주석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하고, 벗어나기 위해서 신형대국관계의 형성을 원했다. 지난 1월에 시 주석은 ‘우리의 목표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하는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미·중 관계의 핵심과 전개방향, 역사를 꿰뚫고 있는 현명한 지도자다. 중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를 알고 있고 현명한 판단을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동북아시아는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역인데 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의 바람직한 생존전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전쟁 이후 미국과 한국은 안보동맹과 민주주의 체제로 연결됐다. 한국은 미국의 대외 외교안보정책에서 대표적인 위대한 성공사례다. 한국민들은 경제를 발전시켰고, 민주주의를 이뤘고, 사회적 진전도 달성했다. 한국은 대단히 활기찬 나라다. 중국은 거대한 국가로 한국과 인접해 있으며 오랜 역사를 통해 한국과 이어져 왔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안정적 관계 유지를 모색해 나가야 한다. 경제적 경쟁이 안보적 문제와 충돌을 빚지 않도록 관리하고, 주변국들과 협력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 한국의 국익은 실제적으로 이 같은 관계 형성에 달려있다. 다만 북한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데, 중국은 한국이 북한을 흡수하고, 국경선이 다시 그려지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 한국의 북한 흡수통일은 중국에는 군사적인 면에서 복잡한 상황을 불러온다. 한국의 생존전략은 주변국들과의 협력체제 유지에 있다고 본다.”

― 남북분단 이후 반세기가 넘게 지났는데, 남북통일은 가능하다고 보는가. 독일식 통일이 한반도에서 유효하다고 생각하는가.

“결과적으로 서독과 동독에서 나타났듯이 한국은 북한을 흡수할 것이다. 서독은 경제적으로 성공한 국가였던 반면에 동독은 실패한 나라였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 주민들이 세계를 알게 될수록 한국을 성공 국가로 여기게 될 것이다. 여기에 남북한의 미래에 대한 해답이 있다. 할아버지 김일성, 아버지 김정일, 아들 김정은의 3대 세습정권 권력 유지의 유일한 핵심수단은 한국과 미국에 대한 적대정책이었다. 이 같은 적대정책 방법론으로 그들은 권력을 유지했고, 사상과 문화를 내부적으로 통제해 왔다. 지금까지 기능했던 북한의 권력 유지 방법론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작동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 남북통일은 북한 내부의 변화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시각도 있다.

“북한 내부에서 군사 쿠데타 등이 발생할 경우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우려되기는 하지만 통일의 중요한 전개과정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남북관계, 남북통일에 대해서 낙관적이다. 북한은 구소련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생각한다. 구소련은 오랫동안 폐쇄경제 체제를 유지한 결과 국민들의 삶은 황폐해졌다. 어느 시점에 이르자 내부의 이데올로기 통제와 공포 통치 방법론이 국민들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소수였지만 국가의 리더십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들은 과거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 공산주의를 신봉했지만 회의감을 갖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구소련은 서방국가와 비교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구소련 주민들은 조금씩 자신들을 돌아보고, 국가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집권하게 됐고, 구소련은 붕괴의 길을 걸었다. 북한 주민들이 더욱 많은 TV와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인터넷을 이용하게 되면 세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급속하게 전해지는 한국 소식은 그들의 사상을 동요시킬 것이다. 중국과의 교역 증진으로 늘어난 많은 왕래자들은 지금도 DVD와 각종 모바일 기기를 내부로 유입시키고 있다. 북한 주민, 특히 젊은 세대들의 의식 속에는 김정은 정권이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로 간에 의견이 오고 갈 것이다. 임계점을 지나면 변화는 외부로 모습을 드러낸다.”

― 김정은 체제에 대한 전망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김정은 정권의 미래는 어둡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앞으로 10년 동안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고, 그보다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정은 정권이 얼마나 갈지 예단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많은 정보들이 북한 내부 사회로 유입될수록 주민들의 김정은 정권에 대한 회의감은 커질 것이다.”

― 세월호 사건 이후 한국 내 여론분열이 심각하다. 세월호와 같은 대규모 재난에서 정부와 시민사회의 대응 및 해법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사실 미국에서도 한국과 유사한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사건과 사고는 어느 국가에서나 일어나고, 일부에서는 정부가 모든 상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공격한다. 최근 에볼라 미국 본토 감염사례에서도 비판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실수가 틀림이 없어’라고 여기는 분위기였다. 4월 나이지리아의 이슬람 무장세력인 보코하람이 약 300명의 소녀들을 납치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왜 미국 정부는 이 같은 비극을 막지 못했는가’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정부가 모든 행위, 과정, 상황을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나의 대답은 ‘노(No)’다. 솔직히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한국의 안전규정과 절차, 공무원들의 직무수행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고 있지 못하다. 다만 우리가 합리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들이 때로는 그렇게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정부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지도자가 누구든지 모든 책임과 비판을 전가하는 태도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글로벌 세계에서 한국이 기여할 점과 한국이 앞으로 나갈 방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은 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대단히 빛나는 성공모델이다. 한국은 전쟁의 황폐화, 불안한 안보환경, 내부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도 역동적인 경제와 국가를 건설했다. 한국경제는 세계에서 10∼12위권이다. 활력 있는 국민들이 있고, 책임 있는 역할을 하려는 인상적인 정부가 있다. 우리는 한국을 통해 남미,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 국가들에 ‘위대한 번영의 모델’이라고 앞으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한국의 역할이고, 국제사회가 한국에 갖고 있는 기대다.”

케임브리지 = 글·사진 이제교 특파원 jkle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