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3주년 특집-불신을 넘어 신뢰사회로>유병언 시신… 천안함 괴담… 믿음 사라진 ‘不信공화국’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김낙중 기자 sanjoong@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발달은 새로운 소통 통로를 만드는 등의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각종 괴담이나 허위사실 유포라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특히 최근에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까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퍼 나르고, 근거 없는 의혹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치적 이득에 따라 우리 사회의 전문가들이 확인한 사실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의혹 제기를 하면서 필요 없는 사회 비용이 급증하고 국가 경영을 위한 최소한의 신뢰 기반도 형성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도층의 무분별한 의혹 제기 = 지난 4월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벌어진 상황은 우리 사회 지도층들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평가가 많다. 사실에 기반을 둬 문제점을 파악하기보다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의혹을 제기하는 데 바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 세모그룹 전 회장의 시신을 확인했다고 밝히고 나흘이 지난 7월 29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인 박범계 의원은 국회에서 ‘가짜 시신’ 의혹을 제기했다. 박 의원은 “경찰 관계자가 보는 자리에서 국과수 직원이 유병언 시신의 키를 쟀을 때 150㎝로 나왔는데 국과수는 159㎝로 발표했다”며 의문을 표시했다. 원내 제1야당 대변인이 법의학 분야 최고 전문성을 자랑하는 정부기관의 발표 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박 원내대변인의 주장은 SNS 등을 타고 퍼졌으며, 아직도 유 전 회장 관련 음모론을 제기하는 측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유 전 회장의 시신 발견과 신원 확인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주장들이 야당에서 잇따라 나왔다.

여당 의원들도 근거 없는 의혹 제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은 세월호 침몰 참사 직후인 지난 4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 단체와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정부 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이다. 국가 안보 조직은 근원부터 발본색원해서 제거하고, 민간 안보 그룹은 단호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색깔론’을 제기하는 글을 올려 논란을 빚었다.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도 4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유가족인 척하면서 선동하는 여자의 동영상입니다”라는 글과 동영상 링크를 올렸지만, 해당 여성은 실제 피해자 가족인 것으로 드러났다.

2010년 발생한 천안함 사건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논란의 대상이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당시 민주당 의원)는 정부의 천안함 폭침 결론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최 지사는 “(정부 발표는) 홀인원이 연이어 다섯 번쯤 난 것과 같은 우연의 연속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지사는 아직도 폭침이라고 결론 내린 정부 주장에 대해 “정부 조사가 부족했다”고 말하는 등 야당과 진보 시민단체 측에서는 여전히 외국 정부 인사들까지 포함된 정부 진상조사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의견이 계속 나온다. 이밖에 방사능, 각종 민영화, 2012년 대통령선거 부정 등과 관련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각종 의혹이 교수, 정치인, 방송인 등 전문가 집단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다.

◇책임 있는 언행 필요 = 최근 들어 다양한 층위의 사회 갈등이 잇따라 표면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 전반적인 신뢰도 향상은 우리 사회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무너진 신뢰 기반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부기관, 정치권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책임 있는 언행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사회 지도층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묻는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경험 때문에 국회의원들의 폭로와 의혹 제기가 과거에는 중요한 고발 수단으로 충분히 보호받아야 했지만, 지금은 권한보다 의무를 더 강조해야 할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하면 제재를 받을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실정법 위반 여지가 있다면 강력한 처벌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기관에서도 정치인이나 사회적 인지도가 상당한 인물들이 근거 없는 사실을 유포했을 경우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며 “지식인 사회에서부터 사실과 다른 의혹을 제기했을 때 더는 발붙일 곳이 없을 정도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병채 기자 haasskim@munhwa.com,
사진=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