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3주년 특집-공공기관 이전, 잃어버린 10년>하루 세끼를 구내식당서… “저녁이 없는 삶 암담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부세종청사로 옮긴 공무원들이 배우자의 직장, 자녀들의 교육 문제 등으로 상당수가 ‘나홀로 이주’했으나 주변의 생활 인프라 부족으로 하루 세끼를 구내식당에서 해결해야 하는 등 암담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사진은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전경. 김선규 기자 ufokim@

국토교통부에서 근무하는 A(50) 사무관은 지난 2012년 말 과천에서 세종청사로 직장이 옮겨오면서 1년 10개월째 고달픈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다. 세종시 원룸촌 6평짜리 원룸에서 일주일에 5일을 혼자 지낸다. 통근은 체력 부담 때문에 뜻을 접었고, 세종시 이사도 검토했지만 중학생 딸의 반대로 포기한 채 ‘나홀로 세종 거주’를 택했다. 식사는 하루 3끼를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있다. 퇴근 이후에는 썰렁한 원룸에 귀가하기 싫어서 매일 처지가 비슷한 동료들과 호프집에서 맥주잔을 기울인다.

A 사무관은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부실한 식사, 늘어나는 음주 등으로 심신이 피폐해지고 있다”며 “만성피로가 생겨 주말에 귀가해도 잠만 자다 보니 가족들과 대화도 끊기고 서로 서먹해지는 느낌”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자녀 교육 등 가정 생활에 대한 불안이 크고 주변 인간관계 등도 멀어져 사회적 고립감도 느낀다”며 “10년 남은 공직을 마감할 때까지 ‘저녁이 없는 삶’을 계속한다고 생각하니 암담할 뿐”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에 근무하는 B(45) 서기관은 서울 양천구에서 세종시까지 출퇴근 버스로 매일 통근한다. 오전 6시에 집을 나서 오후 8시 30분 이후에서 자정 사이 귀가하는 생활이 매일 반복된다. 그는 “세종시로 이사 가면 삶의 여유가 생기겠지만 중학생 이상 자녀를 둔 공무원들은 교육 문제 때문에 거의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하루 5∼6시간씩 걸리는 통근시간과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어학 공부 등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잠으로 때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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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비효율 문제도 심각하다. 한국행정학회는 2009년 일찌감치 정부청사가 세종시로 이전하면 유·무형 비용이 연간 4조8000억 원이나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내년에 세종청사 공무원들을 위해 세운 통근버스 예산만 130억 원에 이른다. 수십억 원을 투입한 장·차관급 관사가 사실상 방치되고 있고, 120명이 숙박할 수 있도록 예산 46억 원이 투입된 공무원 통합관사의 공실률이 90%에 이르러 혈세낭비라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한 과장급 간부는 “장·차관님이 일주일에 평균 2회꼴로 국회에 불려 나가다 보니 부처 내 소통이나 결재까지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장관이 여의도로 가면 차관부터 과장까지 우르르 몰려가야 하는 현실 속에서 차라리 이런 비효율을 차단하려면 국회도 세종시로 옮기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잦은 서울 출장 등으로 인한 업무 공백, 시간 낭비 등 그 밖의 비효율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는 “전자결재가 늘고 상하 간의 소통도 카톡 회의방을 통해 대체하는 경우가 일반화되고 있지만 대면을 통한 깊이 있는 검토나 토론이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의 C 국장은 “국회 업무 등 때문에 서울과 세종을 오가는 생활을 하다 보면 국정의 비효율이 심각하다는 생각을 몸으로 체감할 수밖에 없다”며 “화상 회의 등 디지털 시스템의 이용빈도도 극히 떨어져 큰 도움이 되지 않고 국회 분원 설치나 본원 이전 등 근본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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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세종시로 이사온 공무원의 경우 만족스럽다는 반응도 있었다. 행정도시건설청의 D 과장은 “아직 도시 인프라가 부족하긴 하지만 각박한 서울살이보다 대기오염, 교통체증도 없고 상대적으로 주거·교육비용이 덜 들어가는 세종시 생활이 한결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종시 이전부처 공무원 3명 중 1명꼴은 가정과 떨어져 독신으로 세종에서 거주하거나 힘든 통근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리실이 세종청사 이전 공무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세종시 이전 정부부처 공무원의 19%가 A 사무관과 같은 ‘나홀로 이주 공무원’이다. 또 15%는 아예 이주할 생각이 없다고 응답했다.

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이 지난 4월 세종시로 이전했거나 이전 예정 부처 공무원 1만1691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 1만788명 가운데 85%(9170명)만 세종·대전·충북·충남 등 세종권으로 이주했거나 예정이라고 밝혔다. 15%는 이주하지 않고 수도권에서 통근버스와 KTX·자가용 등을 이용해 출퇴근 할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주자 중 가족 모두는 75.8%를 차지했으나 ‘나홀로 족’이 19%에 달했고 일부 가족 이주는 5.2%로 조사됐다. 또 자녀가 있는 공무원(7097명)의 이주(예정)시 자녀 동반 이주율은 52.2%(3711명)에 불과했다.

공무원들이 이주하지 않는 이유는 배우자 등 직장문제(31.3%)와 자녀교육(31.2%)을 우선으로 꼽았고 퇴직예정 및 파견복귀 등 인사상 사유(16.3%)가 뒤를 이었다. 또 이전 공무원의 54.1%는 주택비와 교통비·식료품비 등의 지출로 월평균 생활비가 54만5000원이 늘어났으며 대중교통·교육·주거 여건 등 수도권 대비 삶의 질은 불만족스럽다는 응답이 무려 75.4%에 달했다.

최근 이 같은 조사결과를 받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태원(새누리당) 의원은 “나홀로 이주가 계속되면 지역균형발전 취지를 제대로 달성하기 어렵고 세종시와 혁신도시 인프라 부족문제는 충분히 예상된 일인데도 지금까지 기본적인 인프라조차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은 문제”라며 “가족 동반 이주율을 높이려면 마트와 백화점·병원·문화시설 등 편의시설 확충과 대중교통 여건 개선 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 = 김창희·고광일 기자 ch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