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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4년 10월 31일(金)
아주 평범한 순간 = 매우 철학적 순간 = 정말 모호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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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철학적인 순간/로버트 롤런드 스미스 지음/남경태 옮김/웅진지식하우스

타임머신에 올라탔다고 상상해보자. 그런데 H G 웰스가 상상한 것처럼 역사의 앞뒤로 가는 타임머신이 아니다. 그 대신 이 타임머신은 시간을 거슬러 우리가 태어난 순간으로 돌아간 뒤 아주 부드럽게 우리의 생애로 들어와 시간을 타고 다시 올라간다. 우리가 첫걸음을 떼고 옹알이를 하던 어린 시절로 데려가고, 수학시험이 한창인 학교 안으로 슬며시 들어가더니, 서툰 첫 키스를 나누는 순간으로 들이닥친다.

그렇게 시간을 따라가며 위기의 중년, 복잡한 감정의 정년 퇴임 파티를 거친다. 현재를 지나 미래로 간 타임머신은 죽음이 다가올 무렵에도 급히 멈춰 서지 않고 조금씩 전진을 계속하더니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죽음 이후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려준다.

경영컨설턴트이자 철학자라는 그리 친해 보이지 않는 두 가지 이력을 가진 저자가 제공하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생의 여행’이다. 타임머신이 거쳐 가는 정거장은 태어남, 걸음마, 학교, 자전거, 시험, 첫 키스, 순결의 상실, 운전면허, 첫 투표, 취직, 사랑, 결혼, 출산, 이사, 중년의 위기, 이혼, 은퇴, 늙어감, 죽음, 내세까지 20가지 인생의 중요한 사건이자 의미 있는 국면들이다.

이 여행을 ‘평범하면서도 특별하다’고 표현한 것은 20곳의 여행지가 세상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거치게 되고, 거쳐야 하는 순간이기에 평범하고, 플라톤, 니체, 사르트르, 한나 아렌트,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키에슬로프스키까지 철학, 문학, 영화와 마돈나의 노래까지 동원해 이 평범한 순간들의 의미를 풀어내며 매우 ‘철학적인 순간’으로 만들어내기에 특별하다.

런던 대학원과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운영하는 ‘인생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이 20번의 평범하고 특별한 순간들에 대해 ‘극히 모호한 순간’이라고 말한다. 직접 이 순간을 겪거나 주변 사람들을 통해 자주 접하지만 언제나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고 넘어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구나 겪기에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에너지를 완전히 쏟아붓고 정신 차릴 수 없게 몰입하는 순간으로, 대부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고, 생각할 여유라곤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분명히 겪었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생각해보지 못한 모호한 순간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모호한 20가지 순간에 대해 여러 철학자, 소설가를 인용하며 다양한 시선,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한다.

삶의 출발점인 태어남에 대해 저자는 사르트르라면 태어남을 독배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했다. 태어남은 삶을 주지만 삶에 필요한 의미는 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말하자면 스포츠카를 받고서 곧바로 열쇠를 잃어버린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렇듯 사르트르의 시선으로 보자면 태어남은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닥친, 절망적인 우연성의 환경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마르틴 하이데거의 눈으로 보자면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태어나면서 특정한 공간을 점하고, 어딘가에 속한다는 점에서 탄생은 시간과 공간의 선물이며, 태어났다는 것은 곧 이미 존재하는 세계와 공존함을 뜻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풀어낸다.

이어 학교는 우리의 정체성이 분열되는 장소로 처음으로 타자로서의 자신이 되는 곳이며, 아버지가 잡고 있던 손을 놓아 처음으로 자전거를 혼자 탈 때 우리는 낯익은 것에서 낯선 것으로 넘어서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고 풀어낸다. 시험은 단순한 테스트가 아니라, 다른 버팀목 예컨대 나를 지지해주는 선생님을 떼어내는 과정으로 봤다.

첫 키스는 단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비밀이며, 운전면허는 처음 만나는 신선한 자유, 첫 투표는 한 나라가 나를 가장 진지하게 대하는 순간이다. 제대로 취직하면 우리는 일하는 동물에서 일하는 인간이 되고, 사랑은 사라질 운명을 인정하면서도 영원을 믿는 고백이라고 한다. 결혼을 통해 서로의 운명을 소유하기로 하고, 출산으로 격렬한 낭만적 사랑은 소중한 현실의 사랑이 된다. 이사는 바로 그날까지 타인이 살던 불확실함으로 뛰어드는 것이라는 해석도 흥미롭다. 중년의 위기는 결국 어디에도 올바른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일이며, 삶의 마지막 종착역인 죽음은 다른 사람들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우리가 죽은 뒤에도 한두 세대 동안 산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그들을 살아가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죽음 다음에 위치할 내세는 정작 죽은 뒤의 사정과는 별로 관계가 없고, 지금 여기 삶과 관계가 깊다고 한다. 그래서 내세는 사실상 양심의 또 다른 이름이 되고,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고 우리를 도덕적 선택으로 이끄는 내적 척도가 된다고 이야기하며 특별한 여행이 마무리된다. 팟캐스트 ‘인생학교 라이브’의 진행자로 활동하고 베스트셀러 ‘소크라테스와 아침을’에서는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일상을 철학으로 풀어 세계 독자들의 호응을 얻은 대중적 철학자답게 철학자와 고전작품들을 적절하게 인용하며 매우 쉽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자기 경험에 따라 아주 좋았던 순간들을 먼저 읽거나 가장 잊어버리고 싶은 순간부터 읽어도 좋다. 앞으로 기대되거나 걱정되는 순간을 찾아 읽어도 좋다. 순서가 어떻든 모든 순간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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