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괴로워한 두 시인, 무대서 부활하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삶을 고뇌하고 사색했던 시인 윤동주(1917∼1945)와 현대 문명과 현실을 비판하고 자유와 저항을 부르짖은 시인 김수영(1921∼1968). 한국인이 사랑하는 두 시인의 시와 삶이 무대에 오른다.

윤동주가 후쿠오카(福岡)형무소에서 수감돼 해수 투입 생체 실험으로 죽어가는 과정을 그린 연희단거리패의 창작 뮤지컬 ‘서시’가 20일 대학로 게릴라 극장 무대에 오른다. 앞서 시인 김수영의 삶과 예술을 연극과 현실을 오가는 독특한 구성으로 재조명한 연극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는 4일 시작돼 30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된다.

‘서시’는 일본인 간호사 요코가 생체 실험대상이 된 윤동주 병실에 배치되면서 시작된다. 요코는 그곳에서 윤동주의 미발표 원고를 발견한다. 윤동주는 요코가 주입하는 바닷물 때문에 피가 묽어지면서 환각을 보게 되고, 요코는 시인의 미발표 원고를 읽으면서 그의 환각에 빠져든다. 결국 윤동주는 죽음을 맞이하지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윤동주의 영혼은 가해자 요코에게 전이되고, 요코는 시인의 영혼을 숙제처럼 껴안는다.

야만적 역사에 희생된 시인의 영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은 윤동주를 돌아갈 고향이 없는 디아스포라로 본다. 중국에서 태어나 일본어로 교육받은 한국인이지만, 정작 한국에서 보낸 시간은 짧았고 그래서 그의 시에 반복적으로 그려지는 고향은 시인의 상상 속에서 그려질 뿐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동주에게 고향은 결국 특정 장소가 아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절대 순수의 유토피아’라고 이 작품은 해석해 낸다.

배우 임현준, 박인화, 김신혜 등이 출연한다. 제3회 셰익스피어어워즈 젊은 연출가상을 받은 이채경이 연출을, ‘블러드브라더스’ 음악감독을 담당한 이수연이 작곡을, ‘날아라 박씨’ 음악감독·‘돈주앙’ 조연출 등을 맡았던 김지현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공연은 12월 7일까지 계속된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에게 욕을 하고…’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1965년)의 앞부분에서 제목을 가져온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는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의 올해 시즌 마지막 작품이다. 이는 김수영이 남긴 시와 산문은 물론 그의 주변인들에 대한 인터뷰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작품 구상 과정에서 작가와 배우들이 겪은 고민을 극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현실과 연극의 경계를 오가며 진행된다.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를 쓰고 연출한 김재엽 극단 드림플레이 대표가 극작과 연출을 맡았다. 연극·TV·영화에서 두루 활동 중인 강신일을 비롯해 정원조, 오대석 등이 출연한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