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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4년 11월 07일(金)
지루해 죽겠다는 당신 일탈하라… 탈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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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인들은 파티를 하면서도 지루함을 느끼고, 이를 견딜 수 없어 도박 등에 빠지는 지루함에 괴로워하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카지노, 사냥, 여행, 파티 등 현대인이 지루함을 견디는 방법들. 문화일보 자료 사진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 / 고쿠분 고이치로 지음, 최재혁 옮김 / 한 권의 책

“한 세대 이전, 노동자의 노동력이 착취되었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노동자의 한가함이 착취되고 있다. 한가함의 착취는 자본주의를 이끌어가는 거대한 힘이다.”

일본 비평계의 주목받는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國分功一郞) 다카사키경제대 준교수는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에서 이렇게 단언한다. 한가함의 착취라니. 저자는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의 ‘행복론’을 인용해 이유를 설명한다. “음식과 집을 얻을 수 있는 수입, 신체 활동이 가능한 건강을 갖추고도 현대인은 불행하다. 사치병이라 부를 수 있는 지루함 때문이다. 지루함은 인류 최대의 아포리아(난제)이다.” 물건이 넘쳐나고 기계문명이 인간의 노동력을 상당히 대체하면서 현대인들은 풍요로운 한가함을 얻었지만 이를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한가함은 지루함이 되고, 지루함의 공포에 제공된 즐거움, 준비된 쾌락을 허겁지겁 소비하며 안도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루함이란 살아있다는 감각의 결여, 살아있다는 의미의 부재, 무엇을 해도 좋지만 딱히 뭘 해야 좋을지 모르는 상실감이며, 어제와 다른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좌절된 상황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지루함의 반대는 쾌락이 아니라 흥분이다.

게다가 지루함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화려한 파티장에서도 지루함을 느끼는 현대인들이기에 지루함은 들여다봐야 할 숙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응급 과제라는 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저자는 먼저 지루함의 역사를 훑어내리고, 파스칼, 러셀, 니체, 칸트, 하이데거, 마르크스, 아렌트, 아도르노, 들뢰즈 등의 철학을 동원해 지루함을 살핀뒤 이를 넘어 우리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인류역사에서 지루함의 씨앗은 인간이 정착해 농경 생활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싹텄다고 한다.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유목생활에 사용할 능력이 비축됐기 때문이다. 이는 예술을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된다. 이어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게끔 허락받은 유한 계급이 탄생해 한가함을 권력으로 과시하게 된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 전통적인 공동체가 붕괴 되고 개인이 누리는 자유의 폭이 넓어지면서 그 여유와 풍요만큼 지루함에 대한 의식이 강해진다. 따라서 저자는 지루함은 근대의 산물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지루함은 시대에 따라 얼마만큼 수면 위로 떠오르느냐, 가라앉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의 원죄라고 한다.

▲  19세기 여름 하루를 한가롭게 즐기는 프랑스 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G.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예를 들어 17세기 프랑스 사상가 파스칼은 사냥을 들어 지루함을 설명한다. 토끼 사냥을 하러 가는 사람에게, 사냥의 목적이랄 수 있는 토끼를 미리 주면 그는 사냥을 하러 가지 않을 것인가. 파스칼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토끼사냥은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루함을 이기기 위한 것, 기분전환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도박도 마찬가지이다. 도박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매일 아침 하루에 딸만큼의 돈을 준다면 그는 행복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지루함보다는 오히려 괴로움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한가함과 지루함의 틈을 파고 든 것이 상업주의와 문화산업으로, 끝없이 모델을 교체하며 새로운 물건을 소비하게 하고, 이미 만들어진 ‘그들이 주고 싶은’ 즐거움에 몸을 맡기게 한다.

특히 저자는 하이데거의 지루함을 통해 현대인들의 지루함이 근대이전 인류의 지루함과 다르다고 설명한다. 즉 하이데거가 지적한 첫 번째 지루함은 어떤 것에 의해 지루해지는 수동적인 지루함이다. 예를 들어 기차역에서 4시간 후에 오는 다음 기차를 할 일 없이 기다려야 하는 사람이 갖는 지루함이다. 두 번째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지만 그 곁에서 지루해지는 것이다. 화려한 파티 속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면서 느끼는 지루함이다. 대상에 완전 몰입하지 못해, 그 틈으로 스며든 지루함인데, 여러 일을 동시에 진행하면서도 언제나 외로운 현대인의 지루함이 그렇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지루함을 멈출 수 있을까. 한가함 속의 지루함이야말로 인간에게 지극히 정상적 상태라는 저자는 이 같은 지루함의 정체를 인지하는 것 자체가 지루함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라고 한다.

이런 인식 아래 끊임없이 모델 교환을 조장하는 소비사회와 단호하게 결별하고, 세계의 다양성을 기호나 관념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낭비와 사치에 가깝게 탐하라고 조언하다. 이와 함께 때때로 ‘불법침입’과 ‘동물이 되기’에 나서라고 충고한다. 사고하는 인간, 이성으로 무장된 근대적 인간의 반대편 상태를 회복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고정된 자기 존재의 문턱을 넘어서 다른 존재로 재구축되는 방식을 발견하고 늘 새로운 활동과 감응을 향해 탈주하라는 의미이다. 또 실천이야말로 지루함과 즐거움이 뒤얽힌 삶을 두려움 없이 낭비하는 일이라고, 실천은 언제나 다음 과제로 확장하라는 말도 덧붙인다.

저자 스스로 이 주제는 대중사회를 분석하는 사회학 서적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진부한 주제라고 말하고, 그의 결론도 ‘보다 생생한 삶을 살라’는 평범한 조언처럼 들린다. 그래도 지루함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좀먹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한가함이 지루함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지루함을 생산적인 한가함으로 만드는 탈주를 시도하라는 철학자의 조언은 몇 번 다시봐도 지루하지 않은 충고이다. 일상의 문제를 아주 쉽게 철학적으로 분석한 책은 기노쿠니아(紀伊國屋)올해의 인문대상 수상작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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