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er Story >[단독]멘털甲 김효주 “ ‘생각없이 치는 것’ 이 나의 골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효주의 스윙은 ‘교과서보다 더 교과서적’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유연성과 일관성이 뛰어나다. 지난 10월 22일 KB금융스타클래식 공식 연습라운드 때 김효주가 드라이버 샷을 날린 뒤 아마추어들이 따라 하기 어려운 안정된 피니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

김효주. 1995년생인 그녀는 우리 나이로 20세이고 만 19세다. 이런 그녀가 골프 좀 아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요약하면 대충 이런 얘기다. “첫째, 올해 대한민국이 내놓을 만한 ‘메이드 인 코리아’ 중 첫손으로 꼽힌다. 둘째, ‘골프여왕’ 박세리의 전적보다 더 빛나는 기록을 만들어가고 있다. 셋째, 지금보다 미래가 더 기대를 모으게 한다.” 맞는 얘기다. 김효주가 올해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원외고 2학년 때이던 지난 2012년 한국과 일본, 대만 등 3개국의 프로 대회에서 잇달아 우승하며 ‘프로 잡는 아마추어’로 이름을 올렸고, ‘괴물’로 통했다.

프로데뷔 첫해였던 지난해 주춤했지만 김효주는 올해는 독기를 품었다. 승승장구가 따로 없다. 지난해 신인왕을 차지했던 김효주는 한 대회만을 남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시즌 5승을 거뒀다. 시즌 중간에 초청선수로 나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에비앙챔피언십에서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이쯤 되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김효주’란 이름 석 자를 알리기엔 충분했다.

취재와 인터뷰로 최근까지 여러 차례 만났던 김효주와 아버지 김창호(56) 씨의 말을 토대로 김효주를 ‘재구성’해보자. 직업이 상금을 버는 프로골퍼이니 먼저 돈 이야기부터 해 보자. 올해 얼마나 벌었을까.

국내 프로골프 선수 남녀를 통틀어 단연 톱이다. 김효주는 2012년 10월 롯데그룹과 전격 후원계약을 체결했다. 2년 동안 ‘연 5억 원 +α’에다 1년을 서로 원하면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최고였던 신지애(26)보다 더 나은 대우로, 파격이었다. 프로골퍼에게 ‘α’는 정해진 게 없는 수입을 보장한다. 성적에 따른 보너스가 주어진다. 김효주는 ‘α’를 우승에만 적용했다. 공 못 치면 보너스를 안 받겠다는 생각에서다. 대개 선수들은 성적을 세분화해 상위입상 시 획득상금의 5%부터 최고 30∼50% 정도로 ‘보험성 계약’을 하는 것과 달리 김효주와 롯데는 ‘통 큰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내용은 선수와 롯데 측이 밝히지 않지만….

김효주는 올해 KLPGA투어 상금으로만 11억9766만 원을 벌었다. 에비앙챔피언십 우승상금으로 48만7500달러(약 5억 원)를 벌었다. 김효주가 후원사(롯데, 스릭슨, LG패션 등)로부터 받는 ‘α’만 10억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김효주가 올해 받은 돈만 따지면 계약금+상금+보너스 등을 합쳐 30억 원을 훌쩍 넘을 것이란 추산이다. 이쯤 되면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이 아니라 백 아들도 안 부럽다 할 만하다.

돈뿐만이 아니다. 골프선수들의 꿈인 미국 진출 기회도 얻었다. 남들은 미국 진출을 위해 몇 차례를 오가며 퀄리파잉스쿨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지만, 비회원 신분으로 LPGA투어에서 우승했으니 이런 고단한 절차도 면제됐다. 몸만 가면 된다.

그런데 기쁠 것만 같은 김효주는 에비앙챔피언십 우승으로 한동안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는 “미국 진출을 내년 말쯤 계획했는데 예상외로 빨리 왔다”면서 “좋긴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도 많다”고 고백했다. LPGA 투어에서 뛰려면 몸만 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만큼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미국에서 적응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LPGA투어 선배들을 통해 익히 들어왔던 터다. 집도 알아봐야 하고, 무엇보다 ‘생활영어’를 익혀야 한다. 그는 “그동안 짬이 날 때마다 영어를 배웠지만, 공식 인터뷰를 통역 없이 소화해낼 만큼 자신도 없고 실력도 없다”고 털어놨다.

사실 그는 2년 전에도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아마추어 때 너무 잘나가다 보니 일본에서도 프로테스트를 면제해줄 테니 오라고 했다. 국내 투어보다 상금도 많고, 궁극적인 목표인 미국 진출을 위해서도 일본은 ‘지름길’이었다. 고민이 됐다. 그러나 이때 선수는 물론, 가족, 코치 그리고 매니지먼트사까지 ‘팀 김효주’ 식구들이 함께 한국 잔류와 일본행을 놓고 각계 의견을 차근차근 들었다. 그는 “국내에 남는 것이 오히려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고 내실을 다질 기회라고 생각하며 한 달간의 고민을 정리했었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처음엔 망설였지만, 막상 미국으로 가기로 하니 후련하다고 했다. 사실 요즘 국내 여자프로들은 KLPGA투어도 대회 수와 상금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굳이 고생하고 많은 경비를 쓰면서 미국까지 갈 필요성을 못 느끼는 분위기다.

올해 이처럼 잘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했다. 기술보다는 멘털이었다. 올해 김효주는 코스에서 멘털 갑이었다. 그의 전담 캐디 서정우 씨는 “김효주는 전 홀에서 실수해서 타수를 잃어도 다음 홀에서 바로 잊는 정신력이 뛰어난 선수다. 타고난 것도 있지만, 샷을 익히듯 멘털도 부단히 단련한 것 같다”면서 “내년에 미국에 진출해도 충분히 성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작 자신의 평가는 어땠을까. 그는 지난해 부진이 올해 약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20개 대회에서 준우승 4차례를 포함해 ‘톱10’에 14차례 들었지만 1승도 못 건졌다. “지난해 루키 시절 주위의 관심이 부담됐던 게 사실인데, 자신도 욕심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을 정도였다. 마치 늪에 빠졌을 때 허우적거리다 더 깊이 빠지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우승은 멀어졌고, 1승도 챙기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올해는 ‘더는 잃을 게 없다’며 부담감을 내려놓으려고 했다. 그랬더니 샷도 잘되고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사람인지라 좋은 스코어를 내겠다고 생각하면 긴장하고 바로 실수도 한다. 그래서 늘 목표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다음 샷만 머리에 떠올린다. 이 때문에 나더러 ‘생각 없이 치는 것 같다’는 말도 하는데, 어찌 보면 내 골프의 한 단면이다”고 했다.

김효주는 초등학교 때부터 ‘골프 일기’를 써왔다. 요즘에도 간혹 기억에 남는 말이나 경기 때 잊을 수 없던 일들을 기록하곤 한다. 이런 노트를 가끔 펼쳐 보면서 위안을 삼기도 한다. 2년 전 처음 공개된 이 일기는 그동안 언론에서 김효주의 멘털 노트로 불려 왔다. 노트 내용 중 5계명으로 ‘지화자조타’가 있다. ‘지= 지금 행동하라. 결단력. 화=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를 같이하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진심으로. 자= 자기만의 색깔을 가져라. 조= 조준하고 공략하라. 타= 타인을 의식하지 마라’. 그의 일기장에는 가수 비가 힘들었던 시절에 했던 “배고픔을 알기에 배고프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도 적혀 있고, 신지애 선배가 방송출연 때 얘기했던 “두 번의 실패는 없다”는 말도 기록돼 있었다.

그는 가급적 집에서는 골프를 잊고 살려고 한다. 자신의 경기가 나오는 TV도 잘 안 본다. 대신 아버지가 녹화해 둔 경기 중 보완이 필요할 경우 딸에게 보여주며 대화를 나누는 게 고작이다.

두세 달 후부터 시작될 그의 미국생활이 궁금해졌다. 내년 스케줄을 물었더니 그는 “아직 확정된 게 하나도 없다”며 곁에 있던 아버지에게 눈을 돌렸다. 그는 이번 주 KLPGA투어 최종전인 조선일보 포스코챔피언십 참가를 끝으로 정규시즌을 마감한다. 그리고 한·일여자프로골프대항전에 출전하고, 12월 8일로 예정된 LPGA 대상 시상식에 간다. 1월 중 미국으로 건너가 임시로 머물 거처를 정해야 하는데, 김효주 스케줄이 어떨지 알 수 없다. 대신 매니지먼트사나 아버지 김 씨가 건너가 알아볼 수도 있다. 아버지 김 씨는 “지금 계획은 내년 2월 태국에서 열리는 혼다LPGA타일랜드가 LPGA투어 루키 데뷔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효주는 내년 시즌 미국에 간다 해도 국내 대회에 자주 나올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디펜딩 대회만 5개나 된다”면서 “여건이 되면 모두 참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고려대 체육교육학과 1학년이다. 체육특기생이지만 시간이 되면 학교에 가 수업을 듣는다. 내성적이어서 낯가림이 심하지만 요즘엔 많이 나아졌다. 최근엔 전공인 배드민턴 과목에서 F학점을 받았다. 사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활동 중인 노승열(23)도 이 과목에서 F학점을 받았다고 했다. 같은 교수님이다. 대회 전날 연습라운드를 거르고 학교로 가 수업을 들은 적도 여러 번 있다고 했다. 시즌이 끝나면 김효주는 라식수술을 할 작정이다. 어렸을 때 골프 치는 데만 집중한 탓에 시력이 나빠져 그동안 렌즈를 끼고 대회에 출전했던 김효주는 여분의 렌즈를 갖고 다녔지만 행여 미국에서 렌즈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판단해 미리 라식수술을 받기로 한 것.

아버지 김 씨는 딸이 보완할 점으로 체력을 첫손에 꼽았다. 골프는 다른 운동과 달리 체지방이 필요한 스포츠다. 하루 종일 걷다 보면 지방을 연소하게 되는데 체지방이 모자라면 체중이 빠지게 된다는 것. 이는 비거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김효주 역시 아마추어 시절보다 바쁜 스케줄 탓에 3㎏ 정도 빠진 이후 그대로이고, 비거리 역시 다소 줄어들었다고 한다. 다시 체중을 늘려 아마추어 시절의 비거리인 270야드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 각오를 물었다.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죠. LPGA투어가 만만한 무대도 아니고, 아는 것도 없으니까, 말 그대로 루키니까요.”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