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여배우 ‘벗는 영화’ 선택… ‘스타덤’ 지름길?

영화 ‘올드보이’ ‘박쥐’ 등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제작 모호필름)는 배우 하정우가 일찌감치 주연 자리를 꿰찬 기대작이다. 연기깨나 하는 여배우라면 충분히 매력을 느낄 만한 작품이지만 좀처럼 나서지 않는다. 제작사 측이 여배우 오디션 공고를 내며 ‘최고 수위의 노출 연기가 가능한 여배우. 노출에 대한 협의는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제작사는 기성 여배우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자 결국 신인 여배우를 중심으로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다. 같은 이유로 최근 개봉된 소위 ‘살색 영화’를 살펴보면 신인 여배우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은교’의 김고은을 시작으로 ‘가시’의 조보아, ‘인간중독’의 임지연, ‘마담 뺑덕’의 이솜 등이 파격적인 노출 연기로 화제를 모았으며 이유영이 오는 20일 개봉하는 ‘봄’에 누드모델 역으로 출연했다. 이미 상영된 영화들의 성적을 놓고 보면 그들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김고은은 ‘은교’로 2012년 대다수 영화상 시상식에서 신인여우상을 휩쓸었고, 임지연 역시 최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부일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연이어 받으며 충무로의 샛별로 떠올랐다. 또 이유영은 ‘봄’으로 지난 5월 열린 밀라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성(性)을 다루는 데 보수적이다. 특히 여성의 노출은 금기시하는 경향이 크다. 이 빗장을 낮추는 기준은 ‘작품성’이다. 뛰어난 감독의 좋은 연출로 빚어진 명작이라면 외설이 아닌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임지연의 소속사 심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노출 자체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단기적으로 화제를 불러모으고 영화의 흥행에 일조하지만, 여배우의 이미지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검증된 감독이 연출한다 해도 노출에 대한 평가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모르기 때문에 기성 여배우들은 출연을 꺼린다”며 “그 때문에 신인 여배우들의 용기 있는 도전은 ‘이유 있는 노출’이 전제돼 있을 때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노출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일부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는 노출 마케팅의 도구로 활용되며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걸그룹 달샤벳의 멤버였던 비키(본명 강은혜)의 주연작으로 눈길을 끈 ‘바리새인’은 메인 포스터에 ‘걸그룹 출신 최초 노출 화제작’이라는 수식어를 걸어 놓았다. 역시 걸그룹 출신인 배우 배슬기는 ‘야관문: 욕망의 꽃’과 ‘청춘학당: 풍기문란 보쌈 야사’ 등 작품성보다는 자극적이고 상업적인 ‘19금 영화’에 연이어 출연했다.

이런 경향은 인터넷TV(IPTV), 케이블TV VOD(주문형 비디오) 등 부가판권 시장이 커지면서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이런 유의 노출 영화는 극장 개봉이 목적이 아니다. 5개 안팎의 상영관에 잠시 걸어둔 뒤 ‘극장 동시 상영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부가판권 시장에서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 이름값 하는 여배우를 앞세워 ‘호객행위’를 하는 전형적인 ‘B급 노출 영화’라 할 수 있다.

이런 영화에 출연하는 여배우들은 ‘노출’이라는 꼬리표에 발목이 잡혀 메이저 영화에서 좋은 배역을 맡기 어렵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봄’은 높은 작품성으로 해외 영화제에서 수차례 수상했고, 이유영 역시 호평받았다. 반면 노출 자체에 초점을 맞춰 성을 상품화하려는 영화는 관객들의 말초신경만 자극할 뿐”이라며 “부가판권 시장에서 수익을 올리기 위해 이런 영화들을 양산하는 제작자뿐 아니라 이에 편승하는 여배우들 역시 장기적 안목을 갖고 작품을 고를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