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 Story >“한국, 늘 시끄럽지만 그게 매력이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보데인 왈라번 성균관대 석좌교수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연구실에서 한국의 매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푸른 눈의 이방인 석학을 만난 것은 가을빛이 완연한 지난 7일 오후였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연구실에서 만난 보데인 왈라번(67·Boudewjin C A Walraven)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석좌교수는 네덜란드 레이던대학(Leiden University) 한국학 전공 교수다. 왈라번 교수에게 사진을 먼저 찍자고 양해를 구했다. 얼굴에서부터 친절함이 묻어나오는 그는 유창한 한국말로 “사진 찍기 아주 좋은 장소가 있다”며 안내했다. 성균관대 내의 문묘였다. 왈라번 교수는 문묘 앞에 있는 수령 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은행나무를 소개하며 “한국의 가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며 이끌었다. 레이던대학에서 성균관대에 온 지 3년이 된 그가 한국의 매력에 빠져든 이유가 무엇일까. 점점 그에 대한 관심이 더해 갔다.

―한국을 공부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1965년 레이던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일본학을 전공했어요. 한국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습니다. 당시 일본 미술, 선불교 등에 관심이 많았죠. 당시 레이던대학의 일본학 교수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학생 시절부터 스스로 한국에 대해 공부해왔고, 한국어도 어느 정도 배운 사람이었죠. 그 교수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 대해 알게 됐죠. 그 시대에는 한국은 물론 일본학조차도 배우려는 학생이 별로 없었어요. 지금은 일본학과에 매년 100∼150명 정도가 입학하는데 당시에는 1∼4학년 모두 합쳐 일본학을 배우는 학생이 6명에 불과했던 시절입니다.”

―논문들을 보면 한국 무속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학생 때는 깊이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그냥 나도 모르게 무속 쪽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어릴 때부터 종교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계속 종교, 특히 민속신앙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리고 한국 무속을 알게 됐을 때는 무속을 공부하고 구경하면서 한국 사회를 많이 알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무당이 ‘굿’을 하는 것은 사람들이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하는 행위잖아요. 굿을 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다 말을 합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앉아 듣고 있는 것만으로 배우는 게 많았어요. 굿을 할 때는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나오죠. 또 갑자기 감정이 변하기도 하죠. 울다가 갑자기 웃기도 하고요. 그래서 한국적인 정서를 알려면 무속을 알아야 한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어요. 한국적인 감정이 어떤 것이 있고, 어떤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죠. 같은 문제도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해결하려 하는지는 나라마다 다릅니다. 무속을 보면 그 나라, 그 사회를 어느 정도 배울 수 있죠. 또 무당은 점쟁이 노릇도 하고 의사 노릇도 하고, 가슴에 맺힌 것들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을 위해 굿을 하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문제, 감정을 다뤄 주는 역할을 하죠.”

―굿을 여러 번 보셨나요.

“물론이죠. 굿을 보면 사람이 죽었을 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감정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볼 수 있어요. 굿을 할 때 울게 되지만 자기 감정을 표현하면서 감정적으로 상태가 좋아지는 것 같더라고요. 굿을 보면 다양한 표현이 나오는데 하나씩 따져보면 아주 재미있어요. 전 세계 어디에 가도 점쟁이는 많아요. 그리고 안수기도를 하거나 죽음 이후를 돕는 사람 등 각 분야에 대한 전문가들은 어디에나 있어요. 하지만 이 모든 분야를 한꺼번에 다 같이 하면서 예술까지 접목하는 사람은 한국의 무당뿐인 것 같아요. 제가 아는 한은.”

―한국의 무속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무속인 중에서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특히 국악 쪽에서 특출납니다. 무속 계통 사람들의 아버지 등 조상 중에 국악을 배운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요즘은 모르지만 1970년대는 그랬죠. 그 집안 자체가 국악이나 무속과 관계된 경우가 많았죠. 정말 재밌어요. 점쟁이나 무당집에 가면 그림이 있어요. 지금은 진짜 민속화가 별로 없는데 이제는 거기에만 살아 있는 민속화가 있어요. 그들은 지금도 계속 민속화를 그려요.”

네덜란드 사람이 계속 무당 등의 한국 무속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자 궁금증이 더 많아졌다. 왈라번 교수에게 ‘점을 본 적이 있는지’ 물어봤다. 그는 “1970년대 한국에 처음 유학 왔을 때 점을 본 적이 있다”며 “손금이 아니라 손등 위의 주름을 보고 점을 보는 사람이었는데 썩 틀리지는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는 “내가 나중에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며 웃었다.

―일본은 어떻게 보십니까.

“원래 일본학을 공부했었기 때문에 일본에 관심도 많고 여행을 많이 했죠. 거기도 흥미로운 게 많아요. 그러나 이제 와서 학문적인 관점에서 보기는 어렵고 제 입장도 한국 쪽에 치우쳐 있죠. 특히 일본의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은 한국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에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이죠. 이번에 네덜란드 국왕이 한국에 오기 전에 일본에 들렀을 때도 위안부와 관련해 좀 어려운 얘기들도 했다고 들었어요. 위안부 문제는 정말 심각한 수준이죠. 다만 독도 문제는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문제는 오히려 한국 국민들이 너무 ‘독도는 우리 땅이다’라고 캠페인을 하는 것이에요. 독도 사랑을 의무처럼 하는데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면 오히려 감정에만 치우치게 되죠. 합리적이지 않다는 거죠. 독도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데) 일본이 갑자기 독도를 무력으로 점령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죠. 한국은 그냥 일본의 주장을 들어 넘기면 됩니다.”

―한국에 대한 시각은 어떻습니까.

“성균관대 석좌교수로 온 2012년 전에도 수시로 왔었죠. 1970년대 한국 유학 이후 여기서 사는 건 두 번째지만요. 1970년대에 처음 왔을 때 한국은 너무 가난했어요. 상점에 가도 살 것이 많이 없었어요. 치약은 럭키밖에 없을 정도였죠. 그래도 불편하지는 않았어요. 물론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지금도 고생하겠죠. 하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어요. 저는 오히려 편안하더라고요. 방바닥 문화도 좋고 음식도 입에 맞아 좋았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은 살기 편해졌지만 그래도 옛날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평생은 모르겠지만 여기에 살 맘이 있었어요. 지금도 달라진 게 많고 재밌는 게 많아요. 예를 들자면 교통이 아주 편해졌죠. 유학생 시절 단오제 보려고 강원 강릉에 갔을 때는 버스 타고 가면 8시간 걸렸어요. 아스팔트가 제대로 안 돼 있어 빨리 못 갔죠. 이제는 고속열차도 생기고 편해졌지만, 어떻게 보면 재미가 사라졌어요.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한국이 좋아요. 특히 좋아하는 게 서울 성곽길인데 청와대 뒤로 가는 길이 정말 좋아요.”

―분단국가인 한국은 항상 시끄럽습니다. 다이내믹하지만 갈등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그게 한국의 매력입니다. 시끄러운 편이지만 흥미롭고 매력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 내에서는 경제가 일본처럼 어려워질 수 있다고 일부에서 얘기하는데, 나는 경제를 잘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과 달리 다이내믹하기 때문이죠. 성균관대에서 같이 있는 캐나다 출신 교수와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슬로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너무 ‘다이너마이트’ 같은 느낌이라고, 안 쓰는 것이 좋다고 하기도 하지만 나와 그 사람은 그 표현이 좋다고 의견일치를 봤어요. 다이너마이트라는 단어는 영어로 ‘익사이팅’(exciting)이라는 뜻으로도 많이 쓰이거든요. 좋지 않나요.”

한국의 속살까지 잘 아는 왈라번 교수에게도 한국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는 것 같았다. 분단국가가 가진 이념적 갈등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과거에 비해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북한과 비교해도 그렇고, 유신시대와 비교해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아직도 일부 사람은 1970년대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어요. 좌파도, 우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서로를 너무 자극하고 있어요. 한국은 갈등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신선종 기자 hanul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