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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경일 기자의 길에서 만난 세상 게재 일자 : 2014년 11월 19일(水)
아마추어처럼 취미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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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트로노미, 브루잉, 밀푀유, 샤퀴트리…. 무슨 암호 같기도 한 이런 단어들은 모두 음식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한국판 미슐랭 가이드’를 표방하며 10년째 매년 미식가이드북 개정판을 내고 있는 ‘블루리본 서베이’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최근 5년간의 미식 트렌드를 정리하면서 키워드로 뽑아낸 단어랍니다.

일단 풀이부터. 가스트로노미는 미적 가치를 중시해 만들어내는 음식 조리법을 뜻합니다. 브루잉은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방식을 미국과 북유럽에서 쓰는 표현이지요. 밀푀유는 얇은 파이 껍질을 여러겹으로 구워낸 페이스트리를, 샤퀴트리는 햄, 테린, 소시지 등 육류 가공식품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죄다 낯선 단어들인데 키워드로 꼽힌 걸 보면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제법 익숙한 모양입니다.

요즘 미식 취미를 즐기는 이들의 음식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문가 뺨칠 정도입니다. 맛있다, 혹은 맛없다를 가르는 정도가 아니라 고깃집에서는 육류의 숙성 방식을, 일식집에서는 회를 썰어낸 칼질의 기량을 따집니다. 한번은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동석했던 이가 상에 오른 음식의 담음새와 음식을 낼 때의 적절한 온도 같은 걸 놓고 따지는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이런 미식가들과 음식을 앞에 놓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화라도 나누겠다면 공부는 필수일 겁니다.

과거에 미식가를 자처하던 이들은 직장 인근의 식당을 섭렵하면서 음식의 평가기준을 ‘가격 대비’로 삼았습니다. 최고의 음식이란 그저 ‘맛이 있으면서 값이 싼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즈음에는 제가 먹는 음식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낯선 메뉴를 외우고 재료를 사들여서 조리하고 음식을 내는 과정까지 모두 꿰뚫고 있어야 인정을 받는 모양입니다. 하기야 취미나 취향이 전문가적 지식으로 확장돼가고 있는 게 어디 미식뿐이겠습니까.

이처럼 취미가 전문가적 지식의 습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취향과 욕망이 다양해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요.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쉽게 전문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정보화 시대의 덕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저마다의 ‘삶’이 ‘경영해야 할 사업’쯤으로 간주되고 있는 세태를 생각해본다면, 취미와 욕망마저도 자기계발 차원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강박증이 개입된 것 아닐까 의심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지위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도구, 혹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과시 대상으로서의 취미라면 그게 어디 즐거운 일이겠습니까. 경쟁하지 않는 아마추어가 되는 일, 카메라를 꺼내 사진찍기에 몰두하지 않고 음식의 맛부터 느긋하게 즐기는 일.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게 취미를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인 듯합니다.

parking@munhwa.com
e-mail 박경일 기자 / 문화부 / 부장 박경일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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