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였던… 그가 남긴 ‘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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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문제 / 로맹 가리 지음, 이재룡 옮김／마음산책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로맹 가리(1914∼1980·사진).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그의 산문집 ‘인간의 문제’는 1957년부터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1980년까지 각종 신문, 잡지, 책 등에 발표한 글들과 대담 형식의 기록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프랑스 현지에서는 지난 2005년 출간됐다.

로맹 가리는 드라마틱한 생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945년 첫 소설 ‘유럽의 교육’이 비평가상을 받으며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해 1956년 ‘하늘의 뿌리’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았다. 이후 ‘스가나렐을 위하여’(1965), ‘흰 개’(1970), ‘밤은 고요하리라’(1974) 등 작품을 발표했지만 초기작과 비교해 문단의 평가는 박했다. 하지만 그가 자살로 목숨을 끊었을 때 프랑스 사회는 크게 술렁였다. 그가 남긴 기록을 통해 1975년 공쿠르상을 수상한 ‘자기 앞의 생’을 비롯해 ‘그로칼랭’ ‘가면의 생’ ‘솔로몬 왕의 고뇌’를 썼던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의 작가가 로맹 가리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는 ‘한물간 작가’라는 세간의 평을 비웃기라도 하듯 필명을 통해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산문집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 두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작가가 아닌, 인간 로맹 가리의 육성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관으로 활동했고, 여러 시나리오를 쓰고 2편의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의견을 피력했다. 현지에서 책을 엮어낸 폴 오디와 장프랑수아 앙구에는 로맹 가리에 대해 “그는 시대의 모든 가치를 검토하고 입장, 생각, 범주, 꿈, 투쟁을 통해 이 ‘인간의 문제’가 지닌 모든 복잡성을 보여주고 읽어주기 위해 즐겨 시사적 문제를 들쑤셨다”고 표현했다.

산문집에 실린 33편의 글들은 문학, 역사, 인간, 사회, 여자 등에 대한 로맹 가리의 입장 표명, 해설, 성찰, 분석을 망라한다. 특히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했던 그의 문학관을 엿볼 수 있다. 그는 1957년 장 다니엘과의 대담에서 “내 소설 전체의 진정한 관심사는 인간의 존엄성이며, 인간의 권리”라고 말했다. 이어 소설의 근본적 조건을 ‘인간적 여지’라고 못 박는다. “우리 시대는 전체주의의 극단에 이르렀고 그것은 정치적 의미뿐 아니라 노동과 가난, 공포와 혼돈, 우리를 짓누르는 위협, 그 총체적 위협이라는 의미에서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이념적 체계 (중략) 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를 오류와 진실로부터 동시에 지켜줄 어떤 인간적 최소치를 위해 언제나 충분한 여지를 보존하려는 관심을 갖고 우리가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온 힘을 다해 외치는 것이 내게는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로맹 가리는 약자, 소수자, 순수, 정의를 옹호했고, 특히 여성성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는 글에서 “내가 했던 일 중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여성성의 옹호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번역자인 이재룡 숭실대 불문과 교수는 “그에게 변치 않는 색깔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여성성에 대한 열정”이라며 “자살하기 직전에 남긴 최후 발언에서 그는 종교를 포함한 인류의 만사를 여자들에게 맡겼다면 역사가 이처럼 난장판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