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무신정권, 문신과 공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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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과 문신 / 에드워드 슐츠 지음, 김범 옮김／글항아리

해외 한국학 권위자인 에드워드 슐츠 전 하와이대 교수의 저작. 고려 무신 집권기 100년을 본격적으로 조명한다. 존 덩컨 UCLA 교수로부터 “논쟁적 시기에 대한 철저하고 종합적인 연구”이자 “이 시기의 발전이 그 뒤 한국 정치·사회·제도사 발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이해하는 데 신선한 관점을 제시한다”는 평가를 받은 학술서로, 제목이 암시하듯 지은이는 무신정권 100년사에서 ‘문무공생’의 고리를 연구해 고려사를 새롭게 서술한다. 한국사에서 무신 집권기는 다른 시대에 비해 관심을 덜 받고 있으며, 결코 짧지 않은 100여 년의 시간은 역사 속에서 변칙과 예외로 취급되어 잊혔다. 무엇보다 이에 대한 해석이 대개 ‘부정적’이라는 사실은 학문적 진전을 막는 장애물이었다. 책은 이 장애물을 가볍게 넘는다. 통설을 거부하며.

저자는 12세기 무렵의 고려를 “세계에서 가장 성숙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고 평가한다. “12세기 이전 한국은 정치적·사회적 제도의 다수를 중국의 통치 형태에서 본받았다. (…)무신 집권기에 고려는 다양한 통치 형태를 실험했는데, 일부는 중국과 일본 전통 모두에서 발견되고 일부는 한국의 독창적인 제도였다.”(12쪽) 슐츠 교수는 특히 최충헌부터 최우, 최항, 최의까지 이어지는 최씨 정권의 문무 통치기구를 비중 있게 다루는데, 최충헌이 공적·사적 기구를 모두 활용하는 ‘혁신적인’ 이중 조직을 발전시켰다고 강조한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적으로 합의제 기구에 계속 의존하고 사회적 해방을 제한해 사회질서를 동결시키려고 한 의도가 깔려 있다. 저자는 “최충헌은 대체로 문반 출신에게 너그러웠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구축하는 데 문신의 능력을 이용하려는 목적에서 그들을 대우했다. 행정 능력과 경험을 지닌 문신 없이 조정을 이끌어가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았던 것이다”고 설명한다. 최충헌은 이러한 통치 방법으로 자신의 체제를 탄탄히 하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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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츠 교수에 따르면,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들은 새로운 정치적·군사적 체제를 만들었고, 사병과 사적 통치 기구를 발달시키는 등 제도적 개혁을 이루었다. 예를 들어 최충헌은 폐정의 시정과 왕의 반성을 촉구하는 ‘봉사십조’를 올리며 10가지 조항을 통해 중앙 조정, 유력 가문, 고위 승려 등과 더불어 나라를 몰락으로 끌고 간 무능한 정책을 비판하고, 농민 반란으로 야기된 혼란과 승려들의 폐단 등을 언급했다. 또 특별 사병인 도방,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전국에 파견한 야별초, 입법·행정·사법기구인 교정도감, 인사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정방, 문객(門客·권세 있는 대갓집에 사적으로 예속되어 있던 집단) 학자로 구성된 서방 등을 확대해 나갔다.

최씨 정권은 예술후원자를 자처해 고려 예술이 발전하는 데 이바지하기도 했고, 문반(文班·문관의 반열) 구조를 다시 활성화시켰다. 최충헌 집권기에 문반의 약 54%였던 문신은 최우 집권기에는 71%, 최항 집권기에는 74%까지 늘어나게 된다.

또, 책은 최씨 정권이 선종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유학에 대한 중요성도 놓치지 않았고 과거를 자주 치러 유교 교육의 위상을 드높였다고 말한다. 따라서 문학이 발전하고 학문도 융성했던 것. “최씨 집권기 동안 뛰어난 문인이 많이 나타났다. 그들은 거의 모두 승려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사찰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고려에서 가장 저명한 문인인 이규보(1168∼1241)는 사찰로 갔던 많은 여행을 글로 남겼으며 특히 선에 관심을 가졌다. (…) 왕조 내내 학자들은 사찰과 늘 밀접한 관계를 가졌지만, 그 연관은 이 시기에 특히 그들이 승려에게 글을 쓰며 논의하고 교류하면서 확고하고 지속적으로 형성되었다.”(222쪽)

저자는 1966년 한국을 처음 방문해 박정희 정권을 보며 고려 무신정권과 연결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경제와 문화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고, 군사력으로 정권을 잡은 한계 속에서 문치(文治)를 중시한 것 역시 공통점으로 꼽는다. 슐츠 교수는 최씨 정권이 거듭된 몽골의 침략, 문객 제도의 몰락, 노비 출신 김준이 일으킨 정변으로 결국 막을 내렸지만 “많은 유산을 남기기도 했다”며 무조건적인 배척이나 비판보다는 새로운 시각으로 무신 집권기를 봐줄 것을 주문했다. 제임스 팔레 워싱턴대 교수가 추천사에서 밝혔듯, 이 기간은 12세기 후반 일본 가마쿠라(鎌倉) 막부와 일부 닮았지만, 국왕을 무력화시킨 반면에 문신은 그대로 관직에 두었고, 고려왕조의 관습과 제도가 왕권이 강화되고 유교 규범이 지배한 조선과 어떻게 달랐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씨 정권의 수립은 합의의 새로운 시대로 이어졌다. 무신 집권기에 무신과 문신의 경쟁에 일정한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역설적 전개다.” (286쪽)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