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차명계좌 속 금융자산 명의자의 소유로 추정… 소유권 주장땐 돈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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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차명거래 금지법’으로 불리는 개정 금융실명제법이 오는 29일부터 전격 시행된다. 법 개정 당시부터 원칙적으로 차명거래를 금지하고, 명의를 빌려준 사람도 처벌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마련되는 등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에 금융생활 전반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금융실명제법의 개정 배경과 내용, 주의점 등을 살펴본다.

1 금융실명제의 역사?

차명거래는 금융자산의 실제 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금융거래를 뜻한다. 1993년 이전만 해도 차명거래는 합법적인 행위로 여겨졌다. 압축 성장을 위해 저축을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차명거래를 허용해 온 배경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82년 대형 금융사기 사건인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이 발생하면서 차명계좌를 금지하는 금융실명제 도입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10여 년의 논란 끝에 1993년 8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금융실명제 도입을 전격 선언했다. 초창기에는 정치와 경제계 간의 검은 유착 관계를 근절하는 수단으로 인식됐으나 지금에 와서는 건전한 금융 관행 정착에 무게를 두고 시행되고 있다.

2 개정 배경?

금융실명제 도입으로 가명이나 무기명 거래가 금지되면서 금융거래의 투명성이 크게 진전됐다. 하지만 차명계좌 개설 금지 조항이 없어 실소유주와 계좌 명의자만 합의하면 차명거래가 허용됐고, 이 때문에 발생하는 범죄형 차명거래에 대해 뚜렷한 제재 방법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기존 금융실명제법상의 ‘실명’은 주민등록표상의 성명.주민등록번호, 법인인 경우 사업자등록증의 법인명.등록번호로 정의돼 가명에 의한 거래를 금지하는 것만 한정해 왔다. 차명거래는 금융자산의 소유권자가 타인일 뿐 거래자의 ‘실명’에 의한 거래이므로 실명거래 의무 위반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개정된 금융실명제법은 차명거래 금지를 명문으로 직접 규정함으로써 입법적 근거를 명확히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결국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취지의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 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했고, 관련 세부 내용이 오는 29일부터 시행된다. 정부는 범죄수익 은닉, 자금세탁, 조세포탈 등 불법행위나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차명거래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3 달라지는 점?

금융실명제법 개정 이전에도 차명거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FIU법), 조세범 처벌법 등으로 제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차명거래의 단초인 명의를 빌려준 것 자체는 처벌할 수 없었다. 새롭게 바뀐 핵심 내용은 차명계좌의 재산 소유권이 ‘계좌 명의자’에게 있다고 추정하고, 계좌 명의자도 처벌 대상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점이다. 지금까지는 계좌 실소유주와 계좌 명의자가 합의하면 차명거래가 허용됐고, 대법원에서도 실소유주의 소유권을 인정한 판례가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재산은 명의자 재산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실소유자가 재산을 찾으려면 소송을 해야 한다. 물론 모든 차명거래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불법재산 은닉, 자금세탁행위(조세포탈 등),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 강제집행의 회피 및 그 밖의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차명거래만 금지된다. 모든 유형의 차명거래를 금지하지 않고 불법.탈법행위 목적의 거래에 한해 금지토록 한 것은 친목회 회비 관리 등 선의의 차명거래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4 예외 허용되는 차명거래는?

‘선의의 차명거래’는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먼저 부녀회.동창회 등 친목모임의 회장, 총무, 간사를 맡으면서 회비를 관리하기 위해 개인 명의로 차명거래하는 것은 허용된다. 문중이나 교회 등 임의단체의 금융자산 관리를 위해 대표자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는 것도 선의의 차명거래에 해당한다. 가족 간 차명거래에도 예외가 적용된다. 우선 미성년 자녀의 금융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부모 명의 계좌에 예금하는 행위가 허용된다. 그러나 증여세 감면 범위를 초과해 소유 자금을 가족 명의 계좌에 예금하면 조세포탈에 해당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5 증여세 감면 범위는 어떻게 되나?

10년간 합산 금액을 기준으로 배우자에게는 6억 원까지 세금 없이 증여할 수 있다. 자녀는 5000만 원까지다. 단 미성년 자녀의 경우에는 2000만 원까지 세금 없이 증여할 수 있다. 부모와 기타 친족의 증여세 감면 범위는 각각 3000만 원, 500만 원이다. 예금자 보호 한도가 5000만 원이어서 가족이나 친지 이름으로 예금을 분산한 경우라도 증여세 면제 한도 내에서만 허용된다. 따라서 이미 가족 명의 계좌에 잔액이 있는 경우에는 증여세를 내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증여 형태로 남겨두고 나머지는 차명거래금지법이 시행되기 전에 원래의 명의자로 전환하는 조처가 필요하다.

6 절세를 위한 가족 간 차명거래?

친족 사이라 하더라도 금융소득종합과세 등 절세를 위한 가족 간 차명거래는 차명거래금지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특히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피하기 위해서나 생계형 저축 등 세금우대 상품의 가입 한도 제한을 피하려고 다른 사람 명의 계좌에 본인 자금을 맡기는 것도 불법이다. 또한 예금의 이자를 타인이 받는다는 사실만으로 불법 차명거래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세금포탈 등 불법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불법 차명거래로 단속될 수 있다.

7 불법 차명거래 구체 사례는?

채권자들의 강제집행을 피하고자 타인 명의 계좌에 본인 소유 자금을 예금하는 행위(강제집행 회피), 불법도박자금을 숨기기 위해 타인 명의 계좌에 예금하는 행위(불법재산 은닉), 증여세 납부 회피를 위해 증여세 감면 범위를 초과해 본인 소유 자금을 가족 명의 계좌에 예금하는 행위(조세포탈행위), 생계형 저축 등 세금우대 상품의 가입 한도 제한 회피를 위해 타인 명의 계좌에 본인 소유 자금을 분산 예금하는 행위(조세포탈행위) 등이 불법 차명거래에 해당한다.

8 차명거래 불법의 경계는?

해당 금융거래가 관련 법령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면 불법 차명거래에 해당하지 않는다. 즉 차명으로 공모주를 청약하는 것도 허용된다. 예금 이자를 타인이 받는다는 사실만으로는 불법 차명거래에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세금포탈 등 불법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 불법 차명거래로 인정된다. 금융투자회사가 고객의 주문에 따라 해당 금융투자회사 명의로 거래하는 행위도 가능하다. 공동대표나 공동명의인 중 1인이 불법 차명거래를 한 경우 거래 당시에 그 1인이 불법 목적으로 차명거래를 한다는 사실을 다른 공동대표 등이 몰랐다면 처벌받지 않는다. 단체마케팅 등을 통해 특정 학교 학생들, 직장 근로자들의 예금을 일괄 유치하는 경우 금융회사 직원이 개별 금융거래자의 거래 목적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 해당 금융회사 직원은 처벌받지 않는다.

9 차명거래법 위반 시 처벌 수위는?

기존에는 차명거래가 발각될 경우 세금만 내면 됐지 형사처벌 조항이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불법 차명거래를 하다 적발되면 실소유주와 이름을 빌려준 명의인 모두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차명거래 범죄 행위는 소멸 시효도 없어 위반 건수마다 처벌이 가능하다. 불법 차명거래에 대한 금융회사의 책임도 강화됐다. 금융회사 임직원이 불법 차명거래를 알선하거나 중개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알선행위란 어떤 일이 이뤄지도록 힘을 쓰는 행위고, 중개행위란 당사자 사이에 매매 등 법률행위가 용이하게 성립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주선하는 행위를 말한다. 금융회사 임직원이 단순히 금융거래를 성립시키는 것에 그치고, 고객에게 불법 차명거래의 소개.권유 등 알선이나 중개로 볼 수 있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처벌되지 않는다. 금융회사는 불법 차명거래가 금지된다는 사실을 고객에게 설명하지 않을 경우에도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금융사 임직원은 거래자의 차명거래가 의심되는 경우 불법 차명거래가 위법임을 설명하고 ‘특정금융정보법’에 의한 보고절차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금융사 임직원은 계좌 개설 시 고객에게 문서 또는 구두로 설명해야 하며, 설명한 내용을 거래자가 이해했음을 서명, 기명날인, 녹취 등의 방법으로 확인받아야 한다.

10 개정법 시행 전후 명의와 처벌 등은?

금융실명제법 개정 이전에 예치된 금융자산과 개정안 시행 후 예치된 금융자산이 모두 명의자 소유로 추정된다. 합의에 따라 타인 명의로 예금을 해놨더라도 명의자가 소유권을 주장하면 처벌을 떠나 자기 돈을 떼일 수도 있다. 만에 하나 명의자가 반환을 거부할 경우 민사소송을 거쳐야만 소유권을 돌려받을 수 있으므로 차명계좌가 있다면 29일 이전에 정리하는 것이 좋다. 전문가들은 가족 명의가 아닌 단순한 지인이나 공동사업자 명의의 계좌는 소유권 분쟁이 생기기 전에 미리 정리해 놓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한다. 금융실명제법 개정안 시행 이후 불법 차명계좌를 해지한 것이 불법 차명거래를 단절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처벌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관범·박정경 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