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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Global Focus 게재 일자 : 2014년 11월 28일(金)
백인女 골라 약물 性폭행 ‘검은 10대 카사노바’
美 ‘국민 코미디언’ 코스비의 추락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그 자신은 코미디의 한 단락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최근 폭로된 일들은 범죄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다. 올해 77세인 빌 코스비. 미국 코미디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아메리칸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그가 추락하고 있다. 그것도 단순한 개인적 파멸이 아니라 미국민들을 심리적 충격에 빠뜨리면서 무너지고 있다. 1980년대 NBC 시트콤 ‘코스비 가족(The Cosby Show)’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은 ‘코미디 제왕’인 그의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약물 성폭행’의 오명. 코스비의 변호인은 허위와 날조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최근 1개월 사이 코스비의 이중 행각에 대해 공개 증언에 나선 피해 여성만 8명에 달한다. 자상한 아빠, 다정한 남편의 상징이었던 코스비의 뒷모습에 미국인들은 경악하며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코미디에서 출발한 사건 = 코스비 사건은 코미디로 시작됐다. 불을 댕긴 것은 한니발 뷰레스, 올해 31세의 흑인 신예 코미디언이다. 그는 지난 10월 16일 필라델피아 트로카데로 극장에서 가진 스탠드 업(마이크를 잡고 서서 하는 공연) 코미디 쇼에서 코스비를 소재로 올렸다. 수차례 그는 코스비 흉내를 내면서 ‘성폭행범’이라고 외쳤고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뷰레스의 코미디는 코미디로 끝나지 않았다. 한 관객이 뷰레스의 코미디 실황을 인터넷에 올렸고, 트위터와 유튜브 등에서 급속도로 퍼졌다.

사실 코스비의 성폭행 의혹은 어제오늘의 뉴스는 아니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코스비가 성폭행을 했다는 의혹은 끊이지 않았고, 2005년에 안드레아 코스탄드라는 여성은 소송까지 제기했다. 당시 코스비와 코스탄드는 비공개 조건으로 소송 취하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이전의 논란들이 줄줄이 제기됐다. 여기에 청소년 모델 출신인 바버라 보먼(47)이 코스비에게 성폭행 당한 사실을 전격 공개했다. 미국 언론 매체에서는 공개증언만 8명이지, 실제 피해자는 숫자를 헤아리기가 힘들다는 보도도 나왔다. 사건은 불에 기름을 부은 듯 걷잡을 수 없이 계속 타올랐다.

◇약물 성폭행 피해자들 = 13일자 워싱턴포스트(WP)에는 눈길을 끄는 독자 기고문이 게재됐다. 제목은 ‘코스비는 나를 성폭행했다. 왜 내 얘기를 믿는 데 30년이 걸리는가’였다. 기고자는 보먼이었다. 그녀는 “코스비는 어린 소녀였던 나를 아버지처럼 여기게 만들어 신뢰를 얻은 뒤 그런 짓을 저질렀다”며 “나중에 주변에 알렸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보먼이 코스비를 만난 것은 17세 때였다. 배우 지망생이었던 그는 1984년 콜로라도의 한 코미디 클럽에서 코스비에게 오디션을 받았다. 보먼은 WP와의 인터뷰에서 “코스비가 ‘뉴욕으로 와라. 코스비 쇼에도 출연시켜주겠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미끼였다”고 밝혔다. 화려한 성공을 꿈꿨던 그녀는 뉴욕으로 왔고, 코스비의 집에 초대됐다. 보먼은 “와인 한 잔을 마셨는데, 기억이 끊겼다”면서 “깨어보니 팬티와 남자용 와이셔츠만 걸치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코미디 작가인 조앤 타르시스는 11월 16일 미국 엔터테인먼트 웹사이트인 할리우드 엘스웨어에 코스비에게 약물 성폭행을 당한 과거를 공개했다. 19세였던 1969년, 타르시스는 코스비의 초대를 받았다. 코스비의 프로그램 대본을 쓴다는 기쁨에 그녀는 저택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보드카와 토마토 주스를 칵테일한 블러디 메리를 한 잔 마신 타르시스는 정신이 몽롱해졌다. 조금 뒤 그는 속옷을 벗기는 코스비의 손길을 느꼈다. 위기를 넘기기 위해 “성병에 걸려 있어 당신 부인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동작을 멈춘 코스비가 구강성교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뒤이어 1세대 슈퍼모델 재니스 디킨슨(59)에서부터 플레이보이 모델 빅토리아 발렌티노(71), 간호사 테레세 세릭니즈(57·사진), 식당종업원 린다 트레이츠(63)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코스비에게 약물 성폭행을 당했다는 고발이 우후죽순처럼 터져 나왔다. 코스비가 플레이보이 창업자이자 사장인 휴 헤프너와 바니걸들에게 둘러싸여 밤마다 질펀한 파티를 즐겼다는 폭로도 쏟아졌다.

◇희극과 비극의 끝, 말 없는 코스비 = 코스비는 지금 말이 없다. 지난 21일에는 우려와 달리 플로리다주 멜버른의 이스턴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가진 공연도 성황리에 마쳤다. 2000석 규모 입장권 전석이 매진됐고, 쇼가 끝날 때는 기립박수도 받았다. 하지만 타격은 크다. 최근 NBC방송은 코스비 주연의 코미디 연속극 기획물을 취소했다. 케이블채널 TV랜드는 코스비 가족 재방영 계획을 취소했고, 드라마 배급사 넷플릭스도 코스비의 77번째 생일을 기념한 ‘빌 코스비 77’ 특집 TV프로그램을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의 진행자 스콧 사이먼은 집요했다. 지난 15일 코스비와 그의 아내 카밀을 초대해 가진 프로그램에서 성폭행 의혹을 세 차례나 물었다. “유쾌하지 않지만 성폭행 의혹이 있는데 사실이냐”고 그는 물었다. 코스비는 아무 말도 없이 고개만 저었다. 두 차례 더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다음 날 코스비의 변호인 존 슈미트는 “코스비는 근거도 없는 데다 케케묵은 중상모략에 일일이 해명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진실은 미궁에 갇혀 있다. 아직 피해자들은 코스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 30∼50년 전 사건이다 보니 법적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코스비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피해자는 10대, 백인 여성, 배우 지망생들이었다. 그리고 모든 사례에서 약물이 등장하고 있다.

우연인지, 암시인지, 예시인지는 모르겠다. 1969년 코스비가 제작한 아홉 번째 코미디 실황앨범에는 힌트가 있다. 앨범 제목 역시 ‘이것은 진실, 이것은 진실(It’s True! It’s True!)’이다. 그는 앨범에서 다음과 같은 코미디를 늘어놓는다. “파티에 갔었지. 다섯 명의 걸들이 외롭게 있더군. 생각해 봐. 내가 ‘스패니시 플라이(최음제의 일종)’만 왕창 갖고 있다면, 저쪽 구석을 완전히 뜨겁게 만들어 놓을 텐데.”

워싱턴=이제교 특파원 jk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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