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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4년 12월 05일(金)
근대 조선 엘리트들이 서양서 맛본 ‘꿈과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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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의 인상 / 김동성 글·그림 / 현실문화

경성 엘리트의 만국 유람기 / 최승희, 나혜석, 손기정 외 지음 / 현실문화


100여 년 전 근대 조선인의 눈에 세계는, 서양은 어떠했을까.

근대의 포문이 열리고, 새 문물과 사상이 물밀듯 들어오지만 조국의 운명은 위태롭기만 한 시대. 고뇌와 좌절이 큰 만큼 새 길에 대한 열망도 강했을 조선 엘리트들은 세상 밖으로 눈을 돌렸다.

새 문명과 제도는 충돌하고, 자아의 정체성, 타자와의 경계, 계층의 위계까지 모든 것이 흔들리던 시대에 ‘이동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현실문화와 황호덕(국어국문학) 성균관대 교수가 기획한 ‘동아시아 근대와 여행’ 총서는 이 이동의 기록이다. 노고의 길이자 갈망의 기록인 근대 엘리트의 여행기들이다. 신문 기자를 거쳐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이자 정치인 김동성의 ‘미주의 인상’과 변호사 허헌, 무용가 최승희, 화가 나혜석 등의 여행기를 모은 ‘경성 엘리트의 만국 유람기’가 총서 1차분으로 나왔다.

“11월 어느 아침, 우리의 긴 여행도 끝이 가까워졌다. 오전 늦게 멀리서 육지의 모습이 보였고, 해안 언덕의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자 놀랍게도 그것은 뉴욕이었다. 뉴욕의 마천루들이 우리의 맨눈에는 길게 늘어선 산맥처럼 보였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고국에서 우리의 신들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유의 여신상을 향해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했다.”

1909년 스무 살 청년 김동성이 뉴욕항에 도착하는 순간이다. 그 뒤 10여 년간 미국에서 유학한 그는 미국 체험기를 엮어 1906년 한국인 최초의 영어 단행본 ‘Oriental Impressons in America(동양인의 미국 인상기)’를 낸다. 귀국 후 이를 번역해 ‘매일신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정황만 살피면 서양 문명 한가운데에 선 변방 국민이 느꼈을 현기증과 복잡한 콤플렉스가 떠오르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 서양문물에 주눅 들지 않고 균형 잡힌 시선으로 미국과 문명을 바라보는 것이 인상적이다. 미국 가정, 대학, 스포츠, 자동차 문화 등을 두루 살피고 여성의 참정권 주장에 적극 찬성하면서도 물질문명은 비판하는 안정감을 보인다. 개인의 자유와 보편적 권리를 높이 평가하는 그는 대통령제에 이렇게 놀라움을 표한다. “최고 책임자를 4년마다 선출하는 일이 가능하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사심없는 동기를 지닌 국민의 심부름꾼에 불과했다. (중략) 동등한 능력을 가진 이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기 때문이다.” 세습 왕과 신분제 역사를 지닌 조선 근대인의 놀라움이 1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감지된다.

‘경성 엘리트의 만국 유람기’는 1930년대 대중잡지 ‘삼천리’에 실린 경성 엘리트들의 세계 여행기이다. 인권 변호사 허헌 부녀의 세계 일주, 최승희의 유럽 공연, 나혜석의 유럽 미술 기행 등이 펼쳐진다. 요코하마(橫濱)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배 3등석 가격이 당시 의사 월급보다 비쌌지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은 꺾을 수 없었던 시대. 사람들은 사재를 털고, 공연에 참가하거나 종교계의 도움을 받는 다양한 방법으로 해외로 나갔고, 일반인들은 이들의 여행기를 읽으며 세계를 경험했다. 두 권 모두 짧은 여행기로 깊은 관찰이나 성찰보다는 가벼운 인상기지만 서양을 바라보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시대를 넘어보려는 근대인의 고민과 열망이 보인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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